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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구부러진 선> 리뷰(결말, 해석 포함): ★★★☆, 미쳤든 미치지 않았든

원더 2022. 12. 16. 22:30

넷플릭스 신의 구부러진 선

<신의 구부러진 선> 줄거리

외진 곳에 있는 한 폐쇄형 정신 병원에 편집증에 걸린 부유한 여성, 앨리스 굴드가 입소한다. 그러나 그녀의 정체는 사립 탐정. 병원에서 일어난 어느 사건을 조사해달라는 의뢰를 받고 직접 환자로 위장해 입원한 것.
그녀는 자신의 능력과 매력을 발휘해 병원의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부딪히면서 사건은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전체 줄거리는 리뷰 아래에↓↓↓↓↓)

 

2시간 35분 동안 6번의 놀람

넷플릭스 신의 구부러진 선 캡쳐


사실 개인적으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그것도 스릴러 장르에는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난 스릴러밖에 보지 않지..... (비-극)

솔직히 말하면 대충 볼만하기만 했으면, 하는 심정으로 기대를 놓고 봤거든요.

 

아니 그런데 정말로 볼만하잖아?

 

넷플릭스 신의 구부러진 선 앨리스

 

작품의 러닝타임은 2시간 30분으로 꽤 긴 편이지만, 앨리스(병원에서는 영어식 이름이 튀기 때문에 '알리시아'라고 불리는데)가 병원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시간은 훌쩍훌쩍 지나갑니다.

 

앨리스는 우아함과 유능함으로 의사와 주변 환자들은 물론 관객까지 금세 자신의 편으로 만듭니다. 

흔한 미국식 여주인공처럼 막 나대지 않아서, 인내심과 관대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현대 관객들이 '민폐'라거나 '오지랖'이라고 섣불리 욕할 구석이 전혀 없어요.

 

스페인 작품이라 배우는 좀 낯설지만 바르바라 레니에는 독특한 매력과 노련한 연기력을 펼쳐 보입니다.

(게다가 생각보다 화면 때깔이 좋고 스타일링이 멋짐)

 

넷플릭스 신의 구부러진 선 의사


그리고 앨리스가 탐정이 아니라 진짜 환자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제기되면서 작품은 서서히 꼬이기 시작합니다. (아니면 적어도 원래 꼬여있던 것이 눈에 띄기 시작하죠.)

 

사실 정상인이 정신병원에 입원하는데, 그가 사실은 미친 건지 아닌 건지(혹은 정상이었다가 점점 미쳐가는) 헷갈리는 전개는 이 바닥에서 그리 드문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신의 구부러진 선>은 진부함을 현명하게 뛰어넘습니다. 자극적인 장면을 때려박거나 매우 쫄리게 만드는 스타일이 아니면서도 '그럼 뭐가 진실이지?'라고 화면에 집중하게 만들죠.

 

시간대를 꼬아놓는 연출이나 여기저기 숨겨진 다양한 미스터리 등 소소한 주변 장치도 있어, 수수께끼가 모자라지 않습니다.

작품 내내 꽤나 놀랄만한 반전들이 몇 번이나 등장합니다.
대략 대여섯번? 150분에 6번이면 꽤나 템포가 훌륭하죠?

 

넷플릭스 신의 구부러진 선 캡쳐

 

무엇보다 높이 쳐주고 싶은 것은 이 반전들이 자극적인 씬이나 불필요한 불쾌함 없이 스토리의 힘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70년대의 정신병원이라는, 자극적인 배경임에도 작품은 상당히 온건한 시선을 띕니다.

물론 앨리스가 입원할 때 받는 굴욕적인 절차나 전기 치료 장면 등 마음이 편하지 않은 장면들이 있긴 하지만, 자극을 위해 소비되는 느낌은 아닙니다. 병원은 미친 사이코들의 소굴이라기보단 조금 이상하지만 대체로 악의는 없는, 안타깝고 슬픈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입니다.

 

또 병원 자체도 나아질 길이 없는 심각한 환자들의 암울한 모습이나 빡빡한 병원 규정, 비인간적인 '우리' 등의 모습이 나오기도 하지만 환자들이 넓은 부지에서 햇볕을 쬐며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을 보면 그리 나쁜 환경은 아닙니다.

 

... 말하자면 '극단적이지 않은 정신병원'을 그린 것만으로도 장점이 있습니다. 이는 작품 기저에 깔려 있는 주제 의식과도 연관이 되는 부분이고요. 주제에 대해서 말하려면 스포일러가 필수불가결한데, 못다 한 이야기는 이 영화의 전체 줄거리와 반전, 결말을 이야기한 다음에 마저 하도록 하죠. 

(스포일러 없이 직접 보고 싶다면 여기까지!)

 

<신의 구부러진 선>
★★★☆
클래식하고 성실한, 스릴러 병동의 모범 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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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아래에는 <신의 구부러진 선>의 전체 줄거리, 결말, 결말 해석이 있습니다.

스포일러 주의!

 


전체 줄거리

병원에서 사건을 조사해 나가던 앨리스는 더 많은 정보를 위해 원장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앨리스가 병원에 잠입하도록 원장이 서신으로 도와주었기 때문에, 그녀는 원장이 당연히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넷플릭스 신의 구부러진 선 알바르 원장
이 인간 보면서 속터짐...........


알바르 원장은 앨리스나 사건 조사 같은 것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며 오히려 그녀를 위험한 정신병 환자라고 단언하는데요.

앨리스는 그에게 반발하지만, 그녀가 '자신에게 사건을 의뢰했다던' 레이문도 가르시아 델올모 박사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면서 그녀의 말은 신뢰를 잃고 원장에 의해 가혹한 치료를 받게 됩니다.

 

넷플릭스 신의 구부러진 선 알리시아


치료 과정 중 앨리스는 무의식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되짚어보고, 남편이 가짜 델올모 박사를 내세워 사건을 의뢰하는 척하고 자신을 입원시키려고 했다는 추리에 도달합니다.


자신이 완전히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깨달은 앨리스는 장난감 공장에 불을 질러 혼란을 일으키고 탈출할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하게 로물로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마는데....
(이게 바로 초반부에 비가 쏟아지는 사건 현장의 전말. 대충 보면 앨리스가 조사하려는 다미안 자살 사건과 관련이 있는 과거의 이야기 같아 보였지만, 실제로는 작중에서 미래의 이야기였던 것.)

 

넷플릭스 신의 구부러진 선 알리시아 탈출


앨리스는 탈출 직전에 로물로의 검시를 위해 찾아온 검시관을 마주치는데, 로물로가 죽었다는 사실을 듣자 병원 밖으로 탈출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포기하고 자신이 검시관으로 위장해 사건 현장에 접근합니다.
(초반부에 검시관에게 병원 문을 열어주던 경비원이 바로 앨리스. 예정된 검시관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왔다는 것도 복선이었던 것입니다.)

앨리스는 경찰과 병원 관계자들 앞에서 살인 사건의 범인을 밝혀내고, 그녀의 능력과 양심을 본 이들은(원장 빼고) 모두 감탄합니다.

 

그리고 앨리스는 살해당한 사람이 로물로가 아닌 쌍둥이 동생 레모였다는 것도 간파하고, 슬퍼하는 로물로를 위로합니다. 

 

넷플릭스 신의 구부러진 선 엔딩


며칠 후, 드디어 앨리스의 퇴소 여부를 결정하는 총회가 열립니다.

 

이미 민심을 잃은 원장은 마지막 발악을 해보지만 원장을 제외한 모든 의사들이 알리시아의 퇴소에 동의하고, 앨리스는 드디어 바깥으로 나가 자유를 만끽할 생각에 들뜨는데....

 

넷플릭스 신의 구부러진 선 엔딩2


알바르 원장은 앨리스를 처음 진단했던 도나치오 박사를 데려오고, 그는... 바로 (앨리스가 남편이 데려온 가짜라고 생각한) 델올모 박사라는 것을 본 앨리스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립니다.

 

 

※ 결말 해석

넷플릭스 신의 구부러진 선 엔딩 장면
공포와 충격이 뒤섞인 이 미묘한 표정이 바로 영화의 마지막 장면

 

이 영화는 내내 앨리스가 진짜 미쳤을 가능성과 제정신인데 억울하게 누명을 썼을 가능성을 정말 '공정하게' 다룹니다. 어느 것을 선택해도 말이 되기 때문에 마지막 장면의 의미 또한 매우 헷갈리죠.

 

1. 앨리스는 미친 게 맞다

전반적인 상황을 고려했을 때는 이쪽이 답이 맞습니다. 

앨리스를 진단하고 입원시킨 도나치오 박사가 실존 인물이라면, 그것보다 더한 증거는 없으니까요.

 

앨리스는 도나치오 박사와 함께 병원에 왔지만,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믿고자 '사건 조사를 위해 병원이 환자인 척 잠입했다'라는 이야기를 만들어내 스스로 믿었고, 그것이 탄로 날 위기에 처하자 거기에 맞는 스토리를 또 만들어내면서 진실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알바르 원장이 매우 짜증나는 인간이긴 하지만 그의 말이 모두 옳았던 거죠.

 

 

2. 앨리스는 미치지 않았다

이 경우에는 원장이 앨리스의 남편과 한패이고, 가짜 도나치오 박사를 데려온 것이 됩니다. 혹은 이 남자가 진짜 도나치오 박사인데 그 역시 한패라서 앨리스 앞에서 델올모 박사인 척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원장이 남편에게 200만 불이라는 비정상적인 액수의 돈을 받았고, 계속 병원의 치부를 묻고 넘어가려는 태도를 보여 다른 의사들에게도 신임을 잃을 정도라는 것, 앨리스에게 유독 방어적으로 나오는 모습이 근거입니다.

이것도 결정적인 증거는 되지 못하지만..


다만 마지막에 나타난 도나치오 박사가 남편이 고용한 연기자라는 것은 상대적으로 신빙성이 떨어지는데, 솔직히 아무리 원장이 돈에 미친 나쁜놈이라고 해도 정신과 의사 백여 명이 모여 있는 총회에 가짜 박사를 데려오는 밑장 빼기를 시전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진짜 도나치오 박사 자체가 남편+원장과 한패일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도나치오 박사가 델울모 박사인 척했다는 것) 이렇게 되면 도나치오 박사가 앨리스를 보지도 않고 진단했다는 게 되어 또 오류가 생깁니다.

 

1번과 2번을 비교해보면, 아주 근소한 차이로 2번의 설득력이 조금 부족합니다. 

하지만 앨리스만큼 똑똑한 인물이라면 곧 돌파구를 찾아낼지도....


원작 소설에서는?

이 영화는 동명의 소설인 <신의 구부러진 선>을 원작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니 답이 있다면 원작 안에 있겠죠.

 

원작 소설에서는 엔딩이 좀 다른데, 앨리스가 실제로 미친 것이 맞습니다.

소설에서는 남편이 자신의 돈을 노리고 결혼했다는 것을 알자 앨리스는 점차 이성을 잃었고, 그 결과 정신병원까지 오게 되었다는 사실이 나옵니다. 그리고 소설에서는 병원의 의사들이 이 사실을 알고도 앨리스에게 퇴소 결정을 내립니다.

 

앨리스를 미치게 만들었던 원인인 남편(과 재산)이 사라졌고, 그녀가 병원 바깥에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충분한 정신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는 근거로 그녀를 자유롭게 풀어준 것이죠.

 

 

작품의 주제

 

.....사실 이 작품의 주제는 '앨리스가 미쳤냐 안 미쳤냐'가 아닙니다.

 

넷플릭스 신의 구부러진 선 병원

 

제목인 '신의 구부러진 선'의 의미는 작중 알바르 원장의 대사에서 나오는데요. 

신이 자신의 완벽한 모습을 본떠 인간을 만들었다면, 정신병원의 환자들은 신이 글을 배울 때 쓴 구부러진 선들(실패작, 습작)에 불과하다는 것. 

 

그러나 정작 원장을 포함해 모든 이들이 '과연 너는 구부러진 선이 아닌가?'라는 질문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병을 치료하는 의사들조차 앨리스에게 속아 넘어가고, 그중에서도 원장은 오히려 앨리스에게 열등감을 느껴 발작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도무지 미덥지 못합니다.

 

그리고 구부러진 선들은 또 어떤가요.

병원에는 정신이 불안정해도 자신의 가족은 살뜰히 챙기는 로물로나 성심껏 앨리스를 도와주려는 이그나시오 등 좋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홀로 (자칭)정상인인 앨리스가 환자들과 교감하는 장면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커뮤니케이션이 조금 어렵거나 힘들 수는 있어도 그녀는 소통을 두려워하지 않고, 환자들도 이에 답을 해주죠. 


앨리스는 구부러진 선이지만, 아무도 그녀가 구부러진 선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이는 스스로 '정상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정신병을 앓는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며, 정신 질환자들에게는 각각의 배경과 인격과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그 누가 구부러진 선을 두고 실패한 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멀리서 보면 거대한 그림의 일부일 수도 있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