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Game No Life

겜알못을 위한 우마무스메 사태 총정리

원더 2022. 9. 26. 18:02

 

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을 위해 이번 우마무스메 사태의 진행과 내용을 총정리해 보았습니다. 정말이지 이런 일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아... 게임은 지웠는데 우리 라이스가 보고 싶어...

 

대체 우마무스메가 뭔데?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는 일본의 사이게임즈에서 만든 경마 의인화 시뮬레이션 모바일 게임입니다. 일본어로 '우마'가 '말'이고 '무스메'가 '소녀'란 뜻이니, 대충 '말 소녀'라는 뜻입니다. 그냥 말딸  

제목대로 실존하는 경주마들이 미소녀 캐릭터로 의인화되어 등장하는데, 플레이어가 '트레이너'로서 그녀들을 훈련시키고 육성해 경주에서 우승하는 게 목표입니다.... 이렇게 굉장히 일본스럽고 씹덕한 게임인 것 같은데 씹덕 게임 맞습니다. 

 

우마무스메 매출 1위

 

그러나 온갖 것을 의인화하는 싸구려 양산형 게임이 쏟아지는 가운데서 <우마무스메>는 2021년 출시 후 대히트를 쳤습니다. 일본 모바일 게임 매출 최상위권에서 내려온 적이 없고, 하루 매출이 대충 150억 원쯤 됩니다. 

게임이 잘된 이유를 들자면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깊이 있는 육성 시스템과 매력적인 캐릭터 디자인, 실제 경마의 충실한 고증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본에서는 경마가 꽤나 대접받고 있는 소재이기도 하거든요.) 

그 외에 애니메이션과 라이브 콘텐츠 등으로 노를 열심히 저어서 서브컬처 전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이 일본 최고 인기작을 카카오 게임즈가 업어와 한국어로 번역하고 독자적인 한국 서버를 만들어 1년 뒤 출시했습니다. 워낙 기대를 모으고 있던 게임인지라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한국에서도 우마무스메 열풍이 이어지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반년만에 카카오 게임즈의 운영에 유저들의 불만이 쌓이고 쌓여 마차 시위를 진행하고 간담회를 요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유저들과 운영진이 얼굴을 맞대고 화해할 수 있는 자리인 간담회에서 카카오 게임즈가 자폭, 유저들이 게임 회사를 상대로 환불 소송을 걸게 되면서 파-국.

 

 

우마무스메 사태의 주요 사건 타임라인

 

8월 20일 : 564 캠페인의 갑작스러운 공지에 대한 불만으로 인한 평점 시위

이때는 그냥 유저들이 불만의 표시로 평점 테러를 하는 평범한 게임계의 일상이었습니다.

8월 21일: 4과문 게시

이때는 그냥 운영진이 의미 없고 추상적인 사과를 때리는 평범한 게임계의 일상 풍경이었습니다. 222

8월 22일: 챔피언스 미팅에 대한 성의 없는 공지 

8월 24일: 2차 사과문 게시

8월 29일: 1차 마차 시위

8월 31일: 1차 트럭 시위

9월 1일: 2차 트럭 시위, 3차 사과문 게시

9월 2일: 유저단의 최후통첩 성명문 발송 

9월 3일: 대표이사 명의의 4차 사과문

9월 5일: 카카오 게임즈와 유저단의 간담회 개최 확정

9월 13일: 2차 마차 시위

9월 17일: 간담회 당일, 리콜 소송 확정

9월 18일: 대표이사 명의의 5차 사과문

9월 23일: 소송 총대와 법무 대리인단의 소장 제출

 

 

 

 

 

◆ 게임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FAQ

▽ 마차 시위를 왜 했어?

재작년부터 게임 운영을 막장으로 하는 게임 회사에 빡쳐서 유저들이 항의의 의미로 전광판에 항의 문구를 쓴 트럭을 보내는 것이 트렌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온갖 게임에서 트럭을 보내다 보니 이제 판교 사람들도 트럭에 별 관심을 안 보이는 지경(....)에 이르러서, 우마무스메 유저들은 화제 몰이 겸 게임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장치로 마차 시위를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우마무스메 마차 시위
확실히 눈길끌기 대성공

 

마차가 동물학대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유저들은 상당히 많은 토론과 확인 작업 끝에 해당 마차를 끄는 말의 건강과 복지에 해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 마차 시위를 결정했습니다. 

 

 

▽ 간담회가 뭐지?

유저들이 선출한 대표가 게임 회사 측과 만나서 각종 쟁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자리입니다.  

 

우마무스메 간담회1우마무스메 간담회 유저 대표단
의외로 유저단은 간담회를 매우 빡세게 준비하고 진행합니다 

 

근데 사실 게이머들이 게임 회사에 간담회를 요구하는 것은 "우리의 항의를 듣고 앞으로 좀 잘해라" 란 의미입니다. 게임에 수십~수천 만원을 쓴 사람들이 우리 돈을 더 가져가도 좋으니 게임 좀 개선하라고 말하는 거예요. 진짜 더럽고 꼬우면 그냥 접었지. 내가 정말 돈을 많이 썼고 앞으로도 쓰고 싶으니 너네가 좀 사람다운 척이라고 하라고.

간담회를 할 때 유저 대표가 질문 사항을 미리 사측에 전달하는 것도 그런 의미입니다. 진짜 게임 회사를 공격하고 싶었으면 그냥 했지, 왜 미리 질문지를 주겠어요. 이러이러한 사항이 우리의 요구니, 검토해보고 답변해달라는 뜻입니다.

 

 

▽ 왜 다들 이렇게 화가 났어?

<우마무스메>가 일본에서 대히트한 게임인 만큼, 이 게임을 한국어 버전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에 큰 기대를 품고 있던 유저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카카오 게임즈는 일본과는 다른 운영을 해서 한국판을 하는 한국 유저들이 (일본판을 하는 일본 유저들에 비해) 손해를 보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해당 내용은 대충 다음과 같습니다.

 

1. 챔피언스 미팅, 고루시 위크 등 주요 콘텐츠에 대한 무성의한 공지

2. 키타산 블랙 카드의 픽업 시간 조정

3. 일본과는 다른 픽업 기간, 티켓의 사용 기한 조정  

4. 푸시 알림 기능 삭제

5. 캐릭터성에 관련된 오역, 의역 문제

6. 피해를 입은 유저들에 대한 보상 및 재발 방지 노력 요구

 

 

제일 큰 문제인 게 뭐야?

1번, 챔피언스 미팅, 고루시 위크 등 주요 콘텐츠에 대한 무성의한 공지는 유저들의 시위를 촉발시킨 직접적인 원인이기도 합니다. 게임의 중요한 콘텐츠를 전날, 대충 공지해서 유저들이 해당 콘텐츠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한 게 문제였습니다.

 

우마무스메 챔피언스 미팅

 

특히 '챔피언스 미팅'이란 건... 뭐라고 할까.  우마무스메에서 가장 어렵고 힘들고 모든 유저들이 1위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종의 시합입니다. 몇 주간의 시간과 큰돈을 들여서 짱 센 우마 무스메를 키워내 대회에 내보내서 서로 경쟁하는 콘텐츠입니다.

그런데 이 콘텐츠에 대한 공지를 하면서 고작 1주일 전에 공지하는 것은 물론 챔미가 뭔지, 뭘 준비해야 하는지 기본 정보는 하나도 없어서 유저들이 대폭발.

 

 

게임을 안 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설명해도 얼마나 큰 일인지 잘 와닿지 않겠지만... 여러분이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는데 전국에서 가장 스케일이 크고 중요한 공모전 마감을 1주일 전에 가르쳐 줬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그 공모전의 구체적인 안내 사항은 하나도 없고, 그냥 주제만 띡 던져준 셈입니다.

 

게임에 돈을 쓰는 유저는 최종 콘텐츠에 매우 민감하고, 특히 챔피언스 미팅처럼 유저가 서로 경쟁하는 PvP 콘텐츠 같은 경우 유저들의 반응은 매우 격합니다. 대부분의 게임에서 욕을 처먹는 이유도 다 랭킹이랑 관련이 되어 있는 거죠.

 

무엇보다도 일본의 본섭 공지 내용과 비교해도 내용 차이가 심하게 납니다. 일본의 공지는 챔피언스 미팅이 뭔지, 어떻게 진행되는지, 어떻게 참가할 수 있는지, 보상이 뭔지 줄줄이 공지를 해놨는데 한국은 그냥 띡 이벤트 기간만 공지했습니다. 챔미가 최종 콘텐츠라는 것, 어렵고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공지예요.

애초에 게임 운영진은 이게 그렇게 중요한지도 전혀 모르는 티를 팍팍 냈으니, 유저들이 화가 난 거죠.

 

 

 

▽ 2번의 '키타산 블랙'은 뭐지?

간단하게 설명을 하죠.

 

우마무스메 키타산 블랙우마무스메 픽업
(왼쪽) 얘가 바로 키타산 블랙 (오른쪽) 공지 보면 분명 11:59까지라고 되어 있습니다 

 

'키타산 블랙'이라는 아주 좋은 카드가 있습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에서 현역으로 쓰이는 서포트 카드로, 많은 트레이너들이 꼭 가지고 싶어 하는 카드죠. 이 카드는 기간 한정으로 8월 10일 12시까지 뽑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카카오 게임즈는 게임 업데이트를 하면서 아침 8시에 서버를 닫아버렸습니다. 쉽게 말하면 가게가 12시까지 영업한다고 해놓고 아침 8시에 공사한다면서 셔터 내린 겁니다. 

아침 8시에서 12시 사이에 가게를 찾아간 사람들은 헛걸음을 하게 된 셈인데... 이것보다 좀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가게는 마일리지 적립제를 운영해서 손님이 매일매일 찾아오거나 다른 물건을 사면 조금씩 마일리지를 주고, 기간 내에 200포인트를 모으면 60만 원에 해당하는 상품(키타산 블랙)을 하나 줬거든요. 그래서 알뜰한 몇몇 고객들은 매일 포인트를 모으고, 마지막 날까지 출석 체크를 해서 딱 200포인트를 채우고 키타산 블랙을 가져갈 생각이었습니다. 전날까지 198포인트를 모아서, '이제 내일 아침 출석 체크로 2포인트 받아야지'라고 했는데........... 갔더니 가게 문이 닫혀있는 거예요.

 

그리고 해당 기간이 지나면 200포인트는 60만 원어치의 키타산 블랙이 아니라 아메리카노 한 잔 값으로 추락합니다. 

 

카카오 게임즈는 '미리 공지했다'며 변명했지만, 그 공지라는 것이 고작 전날, 가게의 인스타그램 공지마냥 접근성이 낮은 곳에 올라와있었기 때문에 많은 유저들은 이를 놓치고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피해를 봤다며 화를 내는 소비자에게 "(마지막 날 뽑으려고 미뤄둔 건) 고객의 선택"이라고 한 겁니다.

 

 

◆ 카겜 최악의 실수는 "고객의 선택" 

(이용자 대표: 확실하게 말씀을 해주세요. 고객들에게 피해를 줬는지, 주지 않았는지.)
운영진: "어.... 그 부분은 고객님 개별의 선택이었고, 피해라고 보지는 않고 있습니다."

 

간담회 도중에 나온 이 명언은 두고두고 우려 먹힐 발언입니다. 이후 카카오 게임즈는 사과문에서 "표현이 미숙했다"라고 변명했지만 한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죠. 

표현이 미숙했던 게 아닙니다. 그냥 부적절했던 거지. 

게임 운영진은 자신들의 상품을 사는 유저들의 편의는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걸 드러내 버렸습니다. 좀 꼬아서 생각하면 (키타산 블랙을 가지고 싶었으면) "포인트로 돈 아낄 생각 말고 일찍 쌩돈 내고 뽑든가" "매일 공지나 부지런하게 확인하지 그랬어"라는 발언이나 마찬가지죠. 

 

막말로 "후에엥ㅠ 죄송합니다ㅠㅠ"만 반복했어도 유저들 마음은 풀렸을지 모르는데, (실제로 다른 게임들은 간담회에서 무조건 저자세로 나가서 급한 불을 끄긴 했습니다) 카카오 게임즈의 고압적인 자세와 법적 대응을 상정해 절대 법적으로 불리한 발언을 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유저들로 하여금 해탈하게 만들었습니다. 

 

공지사항에도 유저들을 위한 보상안이 아니라 구제책이라는 말을 쓰는데, 보상안은 피해를 준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고 보상하겠다는 거고 구제책은 딱히 우리가 잘못한 건 아니지만 선심을 써준다는 의미입니다. 

 

게다가 간담회 이후 쏟아지는 기사는 카카오 게임즈의 입장에서만 쓴 것이 많아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의심도 받고 있습니다. "발 빠른 대응" "진심 어린 사과"같은 워딩을 쓰는 것은 대충 넘어가 주더라도, 유저들을 "피해 호소인"이라고 비하하는 기사까지 나오고 있는 판. 

그리고 제발 게임 기사 쓰려면 그 게임은 좀 해보고 써라 기자들아.....

 

카카오 게임즈는 이미 5차례에 걸쳐서 사과문을 작성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진술이 없는 만능 4과문인데다 간담회 이후에 새로 올라온 공지도 예전과는 전혀 다를 게 없고, 건의 게시판을 신설하고도 1~2줄짜리 매크로 복붙 답변만 달리는 등 아무것도 반성하지 않는 태도를 보입니다.

지금 우마무스메 팀이 이전에 다른 게임들을 말아먹은 팀이라는 흉흉한 소문까지 나오고 있어, 미래는 더욱 암울합니다.

 

 

◆ 그래서 고소미 먹고 앞으로 나아질까?

 

불행하게도 유저들이 환불 소송에서 이길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게임사의 잘못이 없어서가 아니라 현행법상 이 사건에 적용할 수 있는 법 조항이 없고, 법정 싸움이 되면 유저 측이 불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카겜 측이 간담회에서 법적인 꼬투리를 잡히지 않으려고 개같이 작정한 모습을 보면... 더욱... 

 

우마무스메 환불 희망액
환불 희망액은 9월 18일 기준 90억 초과

 

일부 정치인들이 떡밥을 물고 법 개정을 시작하네 마네 설레발을 치고는 있지만, 법이 만들어지는 데에도 시간이 걸리고 만들어진다고 해도 정말 이용자의 편익을 위한 조항이 제대로 반영될지 의문입니다. 

무엇보다 이번 우마무스메 사태는 확률 조작이나 롤백처럼 명백하게 금전적인 피해가 발생하는 행위가 아니라, 무성의한 공지와 갑작스러운 점검 조정 등 불량한 서비스인 게 문제이기 때문에 기준도 애매하죠. 

 

하지만 소송의 결과와는 상관없이, 우마무스메 사건은 한국 게임업계에 길이 남을(.....) 사건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드네요. 이용자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이런 과정을 거쳐서 법도 만들어지고 (카겜은 이미 글렀지만) 게임 회사도 좀 더 유저들을 고려하고 그러겠죠. 우마무스메사태는 게임계의 발전에 필요한 아픔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꼭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고.

 

...... 내 라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