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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모메 식당>을 다시 보면서 느낀 것들

원더 2023. 3. 25. 10:01

 

※ <카모메 식당> (2006)을  다시 보고 나서 느낀 것을 쓴 리뷰입니다.

딱히 스포일러가 될 만한 게 없는 영화지만, 영화 내용 전반에 대한 이야기와 엔딩의 해석이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

 

카모메 식당 엔딩

 

물론 저는 이 영화를 예전에 봤습니다. 어... 기억이 안 나네. 1... 10년쯤 전에...

 

사실 일본 영화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취향이 아니고 처음 <카모메 식당>을 보고 난 감상도 "아... 정말 심심하다." 였습니다. 별 갈등 요소도 없고, 그냥 보고 나면 배가 좀 고파질 뿐인 소박하고 담담한 그런 영화였죠. 

 

카모메 식당 속 사치에와 미도리

 

당시 대학생이던 저는 몰랐습니다.

 

혼자서 갑자기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지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그러지 않으면 못 견디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아주 작은 것이 위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타인이 건네는 친절은 너무나 귀하다는 것을.

 

그래서 그땐 이 영화를 보면서 그냥 '밍밍하다' '재미없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냐'라고 생각했고 영화가 내어오는 소박함, 평온함, 안정감 그런 것 따위에 '이게 뭐라고?' 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의 저에게 있어선 한번도 필요한 적도 없었고 필요도 없고, 손만 뻗으면 훨씬 더 반짝이고 좋은 것들을 가질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그 밍밍한 영화를 다시 보면서 이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카모메 식당>은 동화입니다.

어른, 정확히 말하면 상처받은 어른 여자를 위한 동화.

 


상처받은 어른 여자를 위한 동화

카모메 식당 바닷가의 여자들

 

이 영화는 사실 완벽하게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머나먼 타국에서 만난 친절한 동향인,

아시아 문화에 호의적이고 위협적이지 않은 외국 환경,

의지할 곳 없는 여성들이 서로 기댈 수 있고, 

경제적인 문제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한가롭게 꾸려나갈 수 있는 예쁜 가게. 심지어 나중엔 잘 되기까지 함;

 

정말로 꿈같죠.

소박한 앞치마 차림으로 정성껏 요리를 했다가 멋지게 차려입고 테라스에 앉아 있는 여성들의 모습은 판타지의 정점을 찍습니다. 

남자 없이, 경쟁 없이, 비난 없이, 타협 없이 내 삶을 살 수 있다는 궁극의 판타지.

 

 

카모메 식당 커피를 내리는 사치에

 

이 '꿈'의 지배인은 사치에입니다.

사치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별 변화가 없는데, 어떤 입체적인 인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공간에 가깝습니다. 의인화된 카모메 식당. 사실 사치에와 카모메 식당은 기능적으로도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그녀는 카모메 식당이라는 판타지적인 공간을 운영하면서 미도리와 마사코, 그리고 그들로 대표되는 모든(관객을 포함한) 상처받은 어른 여자들을 받아들입니다.

 

사치에는 뛰어난 요리 솜씨와 굳센 신념, 상냥한 배려심, 능숙한 핀란드어 실력, 심지어 (외부/특히 남자의) 위협에도 스스로 대처할 수 있는 무술 실력까지 두루 갖추고 미도리와 마사코에게 안정적인 피신처를 제공함과 동시에 일본과 핀란드의 문화가 서로 만나도록 중간에서 조율하는 역할까지 하죠.

그녀의 인물상에는 전혀 변화가 없고, 사치에의 심리보다는 그녀를 접한 다른 사람들이 변화하는 과정이 영화의 중심이기 때문에 사실상 사치에는 '주인공'이라기보단 '배경'으로 보는 게 합당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카모메 식당에서 주먹밥을 만드는 세 여자들

 

미도리는 '조신하고 조그마한 일본 여성'이라는 스테레오타입에서 많이 벗어나 있고, 행동도 다소 엉뚱하고 어색한 구석이 많습니다. 한편 지구본을 돌려서 찍힌 장소로 무작정 떠났다는 배경이나 핀란드에도 슬퍼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말하는 장면은, 그녀가 얼마나 기존 일본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했는지를 대충 파악할 수 있는 단서입니다. 

 

한편 마사코는 조용하고 엄격한 인상의, 상당히 일반적인 일본 여성스럽긴 하지만 속내는 훨씬 튀는 4차원이죠. 

에어 기타 대회에 반했다거나, 대담한 마리메꼬 옷을 사입고 등장하는 장면을 보면 그녀 자신을 표현할 상황이 여의치 않았을 뿐 사실은 굉장히 특이하고 개성적인 성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년 동안 부모의 병수발을 드는 의무를 다하고 이제야 겨우 족쇄가 풀린 듯한 느낌을 받은 그녀는, 여유로워 보이는 핀란드의 삶(에어 기타 대회....)을 동경해 먼 땅으로 옵니다. 

 

둘 다 본인들이 원래 있던 곳(일본)에서는 자유를 누리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둘 다 일본 사회에서 그닥 '정상'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억압받는 개성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이건 뭐 우리나라까지 확대해도 마찬가지지만. 

그들이 굳이 먼 핀란드, 카모메 식당에까지 오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현실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필요한 어떤 판타지적인 거리감.

 

영화 내에선 다소 비현실적인 전개가 이어지는데, 다 착한 사람들 뿐이라든가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건 그렇다쳐도 여행 가방 가득 잃어버린 버섯이 들어있고 수영장에서 사람들이 사치에에게 박수를 쳐주는 장면 등은 명백하게 판타지입니다.

 

그런 장면들의 삽입으로 <카모메 식당>의 동화적인 본질이 더욱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죠. 

 


그러나 동화는 동화일 뿐

 

하지만 <카모메 식당>을 보면서 취향이 아니라고 느끼거나, 다소 불편한 감정이 생기는 것 역시 이것이 철저하게 동화이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판타지라서 이 평화로운 화면에서 눈을 돌린 순간 보이는 현실의 위화감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래서 사람에 따라서 이를 현실 기만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실제로 그런-모든 것을 너무 쉽게 표현했다는 이유로 이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도 여럿 봤습니다.

 

(쉽게 말해 자영업자나 외국인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면 빡칠 수 있을 정도로 모든 일이 간단하고 쉬워보인다는 것.)

 

카모메 식당 속 음식과 핀란드 손님들

 

사실 전혀 모르는 사람을 집에 들여주는 경우는 믿기 힘들고, 실제로는 관광객이 단번에 외국에 있는 식당에 취직할 수도 없습니다. 보건증이라든가 비자 문제가 뭐 그런 게 있을 테니까.

'사무라이 정신'이라는 글씨가 쓰인 티셔츠를 입고 오는 핀란드 남자는 너무나 유치한 국뽕의 극치라고 볼 수 있으며, 무민과 마리메꼬로 대변되는 핀란드 문화도 다소 얄팍한 감이 있습니다. 

 

....하지만 동화를 믿고 왕자님을 기다렸는데, 현실엔 그런 인물이 없다는 이유로 동화에 분통을 터뜨리는 것은 바보같은 일입니다.

그리고 그건........ 사실 질투죠. 

 

솔직히 말해서 <카모메 식당>을 보면서 열받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현실은 훨씬 거지같고 답이 없는데 쟤네는 하하호호 편하게 사네.'입니다. 이런 심보를 가지고 있다면 어떤 창작물로 멘탈을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힘들다는 뜻이니 그냥 치킨을 사먹고 일찍 주무세요.

 

 

 

카모메 식당 요리하는 사치에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영화는 기만적인 부분을 약화시키기 위해 아예 판타지로 넘어가는 부분도 있긴 합니다. 예? 어떻게 관광객이 취업 비자 안 받고 식당에서 바로 일할 수 있냐고요? 이건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픽션인데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하지만 한편으로 영화는 '중요한 현실'이 무엇인지 살짝 귀띔해 놓고는 있습니다

 

마사코가 잃어버린 짐을 찾았다는 전화를 받고 작별 인사를 하는 장면 말입니다. 

이 부분은 그녀가 임시적인 표류 상태였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면서 '영원히 이대로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각인시키죠. 

 

그리고 사치에는 담담하게 말합니다. 

하지만 늘 똑같을 수는 없죠. 사람은 모두 변해 가니까요.

 

사치에는 미도리가 떠나면 쓸쓸할 거라고 말하지만, 감정이 그리 절절하게 표현되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미도리가 섭섭해 하지 않을 정도로는.

 

이러한 태도는 이 영화가 마냥 부둥부둥한 얄팍한 판타지물이 아니라는 점을 드러내면서도, 사치에와 카모메 식당이 가지는 의미를 한층 더 깊게 만들어줍니다. 

'모든 사람은 다 변한다'라고 말하면서 정작 그녀는 그다지 변할 것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잖아요. 오히려 오는 사람 다 맞고 가는 사람 안 잡는 그녀(카모메 식당)는 여전히 중심을 잡고 그 자리에 서 있을 거라는 뉘앙스를 풍깁니다. 

 

이곳에 와서 상처가 치유되었다면 돌아가셔도 좋아요, 라고 영화는 말합니다. 너무 섭섭해하지만은 않을게요. 

하지만 좀 더 쉬고 싶다면, 언제까지나 계셔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엔딩 장면에서 카모메 식당은 해피하고 평화로운 현실 도피의 은신처로서의 역할을 다합니다. 

그래, 그것이 동화가 마땅히 해야할 일이니까.

 


(영화 속 음식) 연어와 시나몬롤과 주먹밥

 

예전에는 그저 사치에가 요리하는 장면을 보면서 '와 맛있겠다' 이 생각밖에 안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각각의 음식에 담긴 의미도 있고 연출도 새롭게 보이더라고요.

...이거 정말 잘 만든 영화였구나. 

난 어렸을 때 진짜 아무것도 몰랐구나

 

영화 카모메 식당 속의 연어구이

 

먼저 연어부터. 

연어 자체는 작중 비중있게 나오진 않는데, 사치에는 '연어를 좋아한다'는 일본과 핀란드의 공통점 때문에 핀란드에 오기로 결정했다고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미도리와 마사코가 위안을 찾을 수 있었던 것도 다름아닌 핀란드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인데요.

 

아주 먼 다른 나라, 나를 괴롭게 만들었던 환경과 타인에게서 벗어날 수 있으면서도, (똑같이 연어를 좋아하는) 고향의 감성을 공유할 수 있는 나라.

 

완전히 제로 베이스의 새로운 곳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연어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있었기 때문에 영화는 낯설고 두렵기보다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 연어는 다른 단어로도 치환됩니다. 슬픔, 외로움, 관계, 포만감, 위로.

가장 멀게 느껴지는 나라와의 공통점이라는 부분에서, 연어는 중요합니다.

 

...그리고 맛있지.

 

영화 카모메 식당 속 시나몬롤

 

그리고 <카모메 식당>을 논하면서 시나몬롤을 빼놓을 수가 없죠.

정말이지 보면서 커피가 진하게 땡길 정도.

 

전혀 손님이 없던 카모메 식당에 (토미 빼고) 손님이 오기 시작한 계기는 바로 시나몬롤이었습니다.

 

처음에 사치에는 미도리가 제안한 퓨전 주먹밥을 영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결국 퓨전 주먹밥 실험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미도리는 사과를 하려고 하는데 그날 밤 사치에는 뜬금없이 "시나몬롤을 만들자"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시나몬롤의 냄새에 이끌린 할머니들이 찾아오면서 가게가 번성하게 되죠.

 

일본 가정식에 도전할 의욕이 없던 할머니들이 시나몬롤 냄새를 맡고 들어오는 장면도 꽤나 상징적인데요. 낯선 문화에 대해 호기심은 있지만 어쩐지 머뭇거리는 할머니들을, 사치에 쪽에서 먼저 맞아들인 것입니다.

(비록 그녀는 손님을 끌어들일 의도로 시나몬롤을 구운 건 아니었지만)

 

이전까지는 '언젠가 일식의 맛을 알아주는 사람이 오겠지'라던 다소 수동적인 상태가, 달달하고 익숙한 냄새로 직접 손님들을 끌어들이는 적극성으로 변한 것이 포인트.

 

단순히 다른 두 가지 문화를 대충 섞어서 청어주먹밥같은 걸 만든 게 아니라 핀란드의 국민 간식을 직접 구웠다는 것도 눈여겨볼 점입니다. 문화의 만남이라는 게 그렇게 억지로 섞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영화 카모메 식당 속 주먹밥

 

한편 주먹밥은 사치에가 간직한 '정신' 그 자체입니다.

그녀의 추억을 담은 음식이자, 그녀가 먼 핀란드 땅에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었던 것. 

 

그래서 마사코가 주먹밥을 주문했을 때 사치에는 매우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고, 마티와 리사(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도 주먹밥을 내어줍니다. 자신이 아는 최고의 따뜻함을 담은 음식이니까요. 

 

사실 주먹밥은 맛깔나게 나온 다른 음식들에 비해서 때깔이 고운 것도 아니고, 딱히 "맛있다"며 감탄하는 반응이 나오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주먹밥을 먹게 되는 계기나 주먹밥이 식탁 위에 올려진 상황에 초점이 맞춰지죠.

그래서 더욱 상징적인 의미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아는 영화를 다시 보는 이유

 

두 번 볼만한 영화는 그리 많지 않지만 영화를 두 번 (혹은 그 이상) 보는 건 꽤 재밌어요. 

처음에 못 봤던 장면, 이해할 수 없었던 의미를 알게 되기도 하고 좀 더 다양하고 깊이 있는 감상이 가능해지죠.

 

그리고 그 사이에 시간이 있다면 그 의미는 더욱 깊어집니다.

-예전에 나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많이 달라졌구나.

하지만 이 부분은 예전에도 지금도 똑같네.

그렇게 '예전의 나'를 만나는 기분이 무척 새롭고 오묘합니다. 

 

카모메 식당의 인테리어

 

사실 <카모메 식당>이 전하는 메시지는 매우 단순하고, 또 너무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어서 약간 파헤치는 재미는 없어요. 뭐, 별 갈등도 없고, 10년 전에 느낀대로 약간 밍밍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래서 느긋하고 멍하니 볼 수 있었습니다. 

 

매우 절제되어 있지만 매우 세련된, 그야말로 시대를 타지 않는 북유럽 디자인같은 화면도 정말 좋았고. 지금 봐도 딱히 낡았다거나 촌스러운 장면이 하나도 없습니다. 와-이건 진짜 감탄했어요. 

그러고보니 옛날엔 일본이 영화를 잘 찍었구나 새삼 깨닫기도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는 건 시간이 흐른 후에 봤을 때에야 진가를 알 수 있는 부분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옛날 영화를 찾아보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그리고... 그 옛날엔 왜 그렇게 심심하게 느꼈었는데 지금은 왜 그 심심함이 그립게까지 느껴지는지, 예전보다 지금이 훨씬 더 영화 속에 감정이 끌려들어가는지.

그것 역시 다시 보지 않았더라면,

시간이 이만큼 지나지 않았더라면,

제가 여기저기에 치인 어른 여자가 되지 않았더라면, 

모르는 일이었겠죠.

<카모메 식당>은 제가 이만큼 나이가 들기를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준 셈입니다. 

 

<카모메 식당>

지친 어른 여자를 위한 동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