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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이제 그만 끝낼까 해' 리뷰(+줄거리, 결말 해석) : ★★★★, 마지막으로 꾸는 꿈

원더 2023. 5. 29. 15:58

영화 이제 그만 끝낼까 해 포스터

 

 

이 영화 정말 흥미롭네요.

멘탈이 별로 좋지 않을 때 보는 건 추천하지 않지만.........

 


스토리

영화 이제 그만 끝낼까 해 주인공인 루시

사귄 지 얼마 안 된 '제이크'는 여자 친구 '루시'를 데리고 부모님을 만나러 드라이브 여행을 떠난다. 루시는 내심 '이제 그만 끝낼까 '라고 생각하지만 미처 말을 하지 못한다.

조금 어색한 분위기에서 도착한 제이크의 집. 하지만 그곳에서 점점 당혹스러운 일이 벌어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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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위의 스토리는 거의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일단은 장르가 스릴러라고 되어 있고, 모호하게 불편한 초반 분위기 때문에 긴장하게 되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호러/스릴러식의 사건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더라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습니다. 일단 루시와 제이크가 차를 타고 가는 장면부터 왠지 좀 연극적인 데가 있고, 도로고 나발이고 그냥 눈밭 위에 뚝 떨어진 듯한 집도 이상합니다. 중간중간 뜬금없이 학교 복도를 청소하는 노인 청소부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요.

 

 

영화 이제 그만 끝낼까 해 제이크의 부모님과 함께 식사하는 루시

 

비현실적인 느낌이 더욱 분명해지는 것은 기괴한 제이크네 부모와의 불편하기 짝이 없는 저녁 식사부터입니다. 제이크의 부모는 뭔가 좀 불안한 행동을 보이고, 화제는 불편합니다. 대화의 아다리가 안 맞는 느낌이 강하게 들고 보는 사람까지 체할 것 같죠. 

그 와중에 여자 친구의 이름은 루시, 루이자, 루시아 등으로 바뀌고 저녁 식사 동안 옷차림이 달라지거나 전공, 직업조차 달라집니다. (하지만 루시 본인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저녁 식사가 끝나자 갑자기 제이크의 부모가 갑자기 늙고 죽어가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순간 이건 뭐지 싶죠.

 

영화 자체가 좀 초현실적이고 복잡해 보이는 것과 달리 진실은 의외로 그리 복잡하진 않은데, 그 진실 한 줄을 깨닫는다면 그 다음부터 영화 감상은 전혀 다르게 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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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에서부터는 영화의 전체 줄거리와 엔딩에 대한 해석이 있습니다. 스포일러 주의!

 


영화의 해석, 설명

영화 이제 그만 끝낼까 해 실제 주인공인 늙은 제이크 관리인
중간중간 나왔던 이 할아버지가 바로 진짜 제이크

 

이 영화의 주인공은 고등학교에서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는 나이든 제이크(일명 관리인)입니다. 

 

영화 중간중간 복도를 청소하는 나이든 관리인이 바로 제이크의 실제 모습이며, 영화 속의 거의 모든 일-즉 루시와 제이크가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과정은 모두 그의 상상입니다. 

 

영화 이제 그만 끝낼까 해 루시와 제이크의 모습

 

작품의 처음부터 내레이션을 하는 것은 루시이고 루시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헷갈릴 수 있는데, 루시 역시 관리인의 생각과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제이크가 함께 하길 바랐었던 이상적인 여자 친구를 투영한 환상이죠.

그러나 그의 상상 속에서조차 루시는 제이크와 헤어지려고 합니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

 

관리인이 어떻게 살아왔고 그가 왜 상상에 몰두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대사로 직접 설명되지 않습니다. 사실 본체인 관리인의 모습이 나오는 것도 10분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화면에 나오는 모든 것이 그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한 인간의 내면 심리를 모두 화면에 풀어헤쳐 놓은 광경이라고 할까요.

 

이 점을 짚고 보면 굉장히 흥미로운데, 묘하게 올드한 루시의 스타일링부터 가족 모임의 연극적이고 어색한 분위기, 자꾸만 서로의 말이 엇나가는 것 등등 모든 것이 다 이유가 있습니다. 다 관리인의 상상이니까요.

그리고 한 인물이 상상한 풍경은 그의 내면을 투영하는 법입니다. 영화의 모든 장면은 관리인의 취향과 어렸을 적 좋아한 TV 광고와 가족 관계와 트라우마와 희망과 직장 환경과 꿈과 좌절을 반사하고 있습니다. 시종일관 무겁고 불안한 영화의 분위기는 관리인의 내면 세계가 이미 매우 우울하다는 뜻이죠. 

맨 처음에 루시가 제이크의 차를 타는 딱 한 순간, 잠시 희망을 찾을 수 있었던 그 때를 제외하고.

 

관리인은 가상의 여자친구를 상상했지만, 가족 만남은 빈말로라도 좋게 끝났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젠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왔습니다.

 

영화 이제 그만 끝낼까 해 돌아가는 차안

 

농장을 떠난 후 분위기는 유독 어두워집니다. 이전까지는 남자친구와 헤어질까 말까 고민하는 루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제는 이상한 말과 행동을 보이기 시작하는 제이크가 탐구의 대상이 되죠.

제이크는 루시의 집에 돌아가는 것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다소 두서없는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영화의 초반과 비교하면 거의 다른 사람인 것처럼 말하죠.

 

"우리 사회엔 그런 친절이 결여되어 있는 것 같아. 타인이 발버둥칠 때 이해하려는 의지같은 것도."

 

"늙어가잖아... 청력이나 시력도... 볼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아. 잘못된 길에도 많이 들어섰지."

 

"그 모든 것의 거짓말...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것, 결코 늦지 않았다는 것, 신이 당신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 새벽이 오기 전에 가장 어둡다는 것, 모두 제 짝이 있다는 것."

 

제이크가 그렇게 나이들어 보이지 않지만, 이 대사를 말하는 인물은 매우 늙고 외롭고 괴로운 사람입니다. 사실상 이 부분에서 관객은 제이크의 실체가 관리인이라는 것을 거의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그동안 있었던 숱한 복선들을 다 지나쳤다면)

 


엔딩의 의미 정리

 

집으로 돌아가던 중 그들이 잠시 음료수를 사러 들르는 장면과, 루시가 제이크를 찾아 고등학교 건물로 들어가기 시작한 부분부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장면까지는 실제로 (관리인의 내면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를 살펴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각 장면들을 하나씩 살펴보죠.

 

#1. 루시가 가게에 들르는 장면 / 관리인을 만나는 장면 분석

영화 이제 그만 끝낼까 해 음료수를 사는 루시

 

제이크는 음료수를 사러 잠깐 가게에 들르자고 했으면서, 가게의 여종업원과 대화하기 싫다는 이유로 루시에게 음료수를 사달라고 부탁합니다. 대놓고 제이크(와 루시)를 무시하는 금발 여종업원들은 실제로 그가 여성들에게 가진 피해 의식과 트라우마를 보여줍니다. 

 

루시는 이야기가 통하는 점원에게 주문을 하는데, 이 점원은 "꼭 돌아가지 않아도 되고, 그럴 마음만 먹으면 여기에 머물러도 된다"고 말합니다. 루시에게 사실상 돌아갈 곳이 없으며, 더 나아가면 파멸을 맞이할 것이라는 점을 예견하는 대사죠. 

<매트릭스>의 파란약을 권유하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루시는 거절하고 제이크와 함께 차를 타고 떠나는데, 제이크 때문에 집이 아닌 고등학교(모든 것의 막을 내릴 장소)로 향하게 됩니다.

그리고 학교 안에 들어가버린 제이크를 찾아헤매던 루시는 관리인을 만납니다. 

 

루시가 남자 친구를 찾는다는 것을 듣고 관리인이 그가 어떻게 생겼냐고 묻자, 루시는 돌연 그의 생김새가 기억조차 나지 않고 제이크와의 첫만남부터 별로였다며 제이크를 마구 깎아내립니다. 

루시의 존재 자체가 관리인의 상상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관리인은 이제 포장이나 상상으로 희망을 갖는 것조차 포기했으며 적잖은 자기 혐오를 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담으로 루시의 언행을 보면 관리인이 어느 정도 학식은 있고 독립적인 여성을 존중해주려고 노력하긴 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존중해줄 실제 여성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페미니즘적인 인식이 있음에도 상상 속에서 위안을 얻고자 루시를 이용하고, (페미니즘적인 시각 때문에) 그런 자신에 대해 혐오감을 품고 있는 이중적인 면을 볼 수 있습니다.

 

한편 루시가 관리인의 슬리퍼를 거절하고 떠나는 장면은, 관리인과 제이크를 만족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탄생했던 루시가 이제 자유를 찾는다는(=관리인이 자기 위안거리로 삼았던 그녀를 놓아준다는) 의미를 갖기도 합니다.

 


#2. 춤을 추는 커플의 드림 발레 해석

영화 이제 그만 끝낼까 해 커플 드림 발레 신

 

그 다음엔 뜬금없이 학교 복도에서 좀 더 젊고 발랄한 버전의 제이크와 루시가 나타나 함께 춤을 추는 시퀸스가 펼쳐집니다. 여기에서 제이크와 루시는 결혼을 하는데, 갑자기 관리인 옷을 입은 노인이 나타나 제이크를 죽이고 루시는 도망칩니다.

이는 1930년대 뮤지컬 <오클라호마>의 '꿈의 발레' 장면으로, 원작에서도 젊은 커플이 서로 사랑을 하지만 여자를 쫓는 남자가 나타나 위기를 겪는 장면입니다.

 

뮤지컬 장면을 자기 자신으로 대입하는 과정에서 관리인이 상상하는 자신의 모습은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1. 루시와 서로 사랑하는 젊고 이상적인 청년 제이크

2. 그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악당 노인

 

1번의 경우 관리인이 상상을 통해 진정으로 이루고 싶었던 자기 자신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2번이 1번은 죽이는 것은, 관리인의 꿈과 이상을 죽이는 것이 자기 자신(의 현실)이라는 뜻이 됩니다. 루시와의 대화에서 엿보였던 자기 혐오가 더욱 크고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이죠. 

 


#3. 제이크의 공로상 장면과 마지막에 부르는 노래의 의미

영화 이제 그만 끝낼까 해 엔딩 장면의 의미

 

그리고 화면이 바뀌고, 제이크는 물리학자로서 성공한 삶을 살았으며 많은 관중들 앞에서 영예로운 상을 받습니다. 

 

특이하게도 평생 공로상을 받을 때의 그는 관리인이 아니라 젊은 제이크가 나이든 모습으로 나옵니다. 즉, '제이크' 배우가 노인 분장을 하고 나오죠. 이는 관리인이 상상하는, 그가 살지 못했던 그의 모습입니다.

(이 장면의 모든 것이 '가짜'이기 때문에 관중석의 모든 인물들도 다 그가 아는 사람들이 노인 분장을 하고 있습니다.)

 

또 수상 후에 갑자기 그는 뮤지컬 <오클라호마!>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데요.

뮤지컬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다면 가사를 듣고도 무슨 뜻인지 다소 모호할 수 있습니다. 일단 부르는 곡은 '외로운 방'으로, 삐꺽이고 낡은 헛간의 비참한 환경에서 자신이 꿈꾸는 여성을 찾아 손에 넣기 위해 나아가겠다는 결의에 찬 곡입니다.

 

대충 생각하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사랑하는 여주인공을 찾아 떠나겠다는 결심이 담긴 것 같지만, 문제는 <오클라호마!>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은 남주가 아니라 여주를 쫓아다니는 반동인물 '주드'이며, 그가 가진 비참한 환경을 스스로 인식하고 가질 수 없는 것을 목표로 삼는 장면이라는 점입니다. 

 

<오클라호마!>의 남주(컬리)와 여주(로리)는 위의 발레 씬에 나온 그 커플이고, 그들을 방해한 게 주드예요. 그리고 <오클라호마!>에서 주드는 끝까지 로리한테 질척거리다 컬리한테 칼맞아 죽습니다. 그리고 '외로운 방' 전에는 컬리가 농담조로 주드에게 자살하라는 이야기를 하는 장면도 있습니다. 

 

즉 관리인은 뮤지컬의 비참한 악역에 자신을 대입하고, 악역이 자신의 현실(낡은 헛간)을 깨닫고 울부짖는 노래를 자신의 마지막 곡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영화 이제 그만 끝낼까 해 관리인의 죽음

마지막으로 꾸는 꿈

 

그리고 영화는 다음날 아침, 눈이 수북하게 쌓인 트럭을 비춰주면서 끝납니다.

 

네, 관리인은 죽었습니다.

아마도 심장 발작이나 저체온증 혹은 인생 그 자체 때문에.

"이제 그만 끝낼까 해."라는 대사는 처음부터 약간의 자살일 가능성을 암시하며(최소한 수동적인 의미로라도), 그가 옷을 다 벗고 돼지를 따라 학교로 들어가는 장면서부터는 죽기 전의 환상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어떤 사람에게는 (아직)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일 수 있으나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나 일목요연해서 가슴이 아픕니다. 

사실 그의 발버둥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려고 아주 살짝 노력하기만 하면 영화 자체가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그 노력이 있다면 한 인간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공간을 거닐고, 대화를 듣고, 트라우마와 상처를 발견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사회로부터 소외당하고, 누구에게 발견되지도 사랑받지도 못하고, 혼자서 외롭고 쓸쓸하고 괴롭게 나이든 인간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꿈 속에서.

 

넷플릭스 영화 이제 그만 끝낼까 해 벽지

 

<이제 그만 끝낼까 해>
★★★★
당신의 마지막 꿈은 아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