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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위머스> 리뷰(+실화): ★★★★ 어쩌면 너를 변화시킬지도 모르는 이야기

원더 2023. 5. 7. 23:16

 

넷플릭스 영화 더 스위머스 포스터

※ <더 스위머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이 리뷰는 실제 사실과 함께 영화의 후반부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열람에 주의!

 

 

<더 스위머스> 줄거리와 실화

수영 코치인 아버지 밑에서 올림픽 수영 선수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던 시리아 소녀 유스라는 망명 신청을 위해 언니인 사라, 사촌오빠인 니자르와 함께 시리아에서 독일에 이르는 기나긴 여정에 오른다.

난민이 되어 수많은 어려움에 직면하면서도, 2016년 리우 올림픽에 참가하겠다는 유스라의 목표는 꺾이지 않는데....

 

..... 이 이야기는 실화입니다. 

 

더 스위머스 실화 주인공 유스라 마르디니더 스위머스 실화 주인공 사라 마르디니
(왼쪽) 유스라 마르디니 (오른쪽) 보트 위- 사라 마르디니

 

유스라 마르디니는 2016년 난민 올림픽 팀에 참가해 화제를 모은 수영 선수입니다.

 

심지어 터키에서 그리스로 배를 타고 밀입국했는데 모터보트가 고장 나서 가라앉기 시작하자 유스라, 사라 그리고 수영을 할 수 있는 두 명이 물에 뛰어들어 3시간 넘게 보트를 밀고 당긴 것도 사실입니다.

이후 독일 베를린까지 도보로 이동한 유스라는 끊임없는 훈련 끝에 난민 올림픽 팀에 선발되었고 2016년 리우 올림픽과 2020년 도쿄 올림픽에 출전했습니다.

 

그리고 유스라의 언니인 사라 마르디니는 난민을 돕기 위한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나오지만 사라가 다른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그리스 당국에 체포된 것도 사실입니다. (2022년 12월 기준)

그래도 이후 국제 앰네스티 및 다양한 인권 단체들의 항의와 서명 운동이 이어졌고 혐의는 절차상의 이유로 기각되었습니다. (2023년 1월 기준)

 

 


바다를 헤엄치다

영화 더 스위머스

 

'난민 소녀가 올림픽에 출전하기까지'라는 한 문장으로 이 영화를 요약하는 것은, 맞는 말이긴 한데 충분한 말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저 문장은 유스라를 너무나 피상적이고 관념적인 피해자로 인식하면서 지금 우리와는 관련이 하나도 없는 머나먼 사건 속 등장인물로 치부해 버립니다. 교훈과 후원을 짜내기 위한 신파가 적잖이 예상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더 스위머스>는 난민이라는 추상적인 개념보다 사라와 유스라라는 개인에 집중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이름도 낯선 도시에서 온 불쌍한 난민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젊은 수영 선수 자매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도록 합니다.

 

영화 속 사라와 유스라는 아이폰을 들고 클럽을 즐기는, 우리와 다를 것 없는 소녀들입니다. 옆집에 사는 것만큼 가깝진 않더라도 인스타를 팔로우하고 dm은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거리감입니다. 

 

그런데 이 활기찬 소녀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무너진 폐허와 군인들 사이를 지나 귀가하고 페이스북을 통해 친구가 폭격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대학교를 나온 번듯한 청춘들이 꾀죄죄한 몰골로 트럭에 실려가고, 수십 명의 생존과 탈출 가능 여부는 순전히 지나가는 유럽인이 친절한가 안 친절한가에 따라 달렸습니다.

 

우리와 생각보다 너무나 가깝고 비슷한 사람들이 겪는 믿을 수 없는 고난은 뉴스의 짤막한 영상이 제공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더 스위머스의 사라와 유스라

 

여기에서 사라와 유스라의 케미는 영화를 이끌어가는 강한 힘입니다. 

약간 사고뭉치 스타일이지만 당차고 책임감 있는 사라와 외유내강 그 자체인 유스라는 둘 다 굉장히 매력적이고, 자매 관계의 현실성도 두드러져 영화 전체에 생기와 설득력을 불어넣습니다. 

 

서로 다른 진로 문제로 고민하고 성격 차이로 싸우다가 여전히 서로를 의지하는 모습은 상당히 리얼한데, 개인적으로 가장 와닿았던 부분은 사라가 그리스로 떠나기로 결정하고 유스라가 혼자 굉장히 외로움을 타는 거. 늘 곁에 있어준 사라가 곁을 떠난다는 것은 유스라에게 있어서 큰 상실이었고, 한편으로는 자매 둘 다에게 독립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함께 살아온 가족이지만 결국은 각자의 삶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오는 법.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는 리우까지 찾아와 유스라에게 결정적인 격려를 해줍니다. 멀리 있어도 필요할 때는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도 언니가 할 일이니까.

 

여담으로 사라와 유스라 사이의 케미와 연기가 진짜 좋다고 생각했는데, 무려 배우들이 친자매라고.(!)

 


처참한 세계를 아름답게 보기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난민을 다뤘다거나 실화를 소재로 했다는 것이 아니라, 난민 소녀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는데 (혹은 했음에도 불구하고) 화면이 패셔너블하게 느껴질 정도로 예쁘고 세련되었다는 것.

 

넷플릭스 더 스위머스 영화 클럽 움짤
넷플릭스 영화 더 스위머스 구명조끼들

 

특히 초반, 클럽에서 자매가 춤을 출 때 멀리서 폭격이 비춰지는 씬이나 난민들이 도착한 해안가에 수 만개의 구명조끼가 깔려있는 장면 등은 정말 강렬합니다. 장면 자체가 담고 있는 처참한 상황에 비해서 너무... 뭐라고 할까.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비참한 상황이 이렇게 예뻐도 되는 걸까?

 

감동과 가난과 신파가 한 몸이나 마찬가지인 한국 영화와 피해자는 언제나 피해자스러워야 한다(아니 난민주제에 아이폰을?!)는 엄격주의에 절여진 입장에서는 꽤나 문화적인 충격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미감은 영화를 완성하는 주요한 부분입니다.

 

이 영화 속 카메라는 가장 마음 아프거나 충격적인 순간 가까이 다가가서 상처를 잔인하게 헤집기보다는 멀찍이 떨어져서 약간 내려다보는 구도로 잡으면서 개인(마르디니 자매)을 뛰어넘는 상황의 비극을 조망합니다. 

그래서 구명조끼 씬이나 난민 캠프의 풍경은 시각적인 충격을 주는 한편으로, 일정 수준 이상으로 관객의 마음을 공격하지는 않습니다. 

 

난민들이나 난민을 대하는 다른 사람들의 태도(브로커, 사기꾼, 자원봉사자 혹은 마을 사람들) 역시 매우 정제되어 표현됩니다. 대체적으로는 온정적인 시선이긴 하지만, 지나친 비참함도 과도한 동정도 없습니다. 

 

영화 더 스위머스 속 주인공 유스라 마르디니

 

카메라가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사라와 유스라 뿐입니다. 배우들의 훌륭하고 섬세한 연기에 힘입어 마르디니 자매는 영화 전체를 단단하게 붙잡는 중심이 됩니다. 

 

적절한 거리감의 조절과 섬세한 포장은 <라이프 오브 파이>처럼 현실의 고난을 판타지로 바꿔버리지 않고도 그것을 견딜 수 있는 힘을 부여합니다.

 


벅차오르는 스포츠의 절정

난민 올림픽 팀의 유스라 마르디니

 

<더 스위머스>에서 올림픽 대회가 차지하는 비중이 생각보다(적어도 영화 초반에 언급되는 것만큼) 크지는 않지만, 스포츠에 대해 상당히 진지하게 접근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스포츠물에서 가장 중요한 건 벅차오름이라는 감정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정확히 설명하기 힘들지만, 스포츠 팬이라면 장르를 불문하고 누구나에게 명확한 감정. 그런 벅차오름은 여태까지 쌓아온 모든 서사가 합쳐져서 한번에 터지는 순간 찾아옵니다. 영화든 실제로든.

 

사실 수영은 연출하기 꽤 어려운 종목이라고 생각하는데 유스라의 수영 장면은 단순한 '운동'을 넘어서 작중의 모든 요소-운동 선수로서의 꿈과 진로 문제, 엄정한 스포츠의 세계, 그리고 난민이라는 영화의 주제가 잘 어우러진 한 편의 훌륭한 퍼포먼스였습니다.

숨을 멈추게 하고, 눈을 뗄 수 없게 만들고, 무엇보다- 가슴을 벅차오르게 만드는.

 

또 어렸을 때부터 수영을 해왔지만 결국 다른 길을 선택한 사라 역시 스포츠물의 좋은 변주라고 느꼈습니다. 유스라는 경영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지만 사라에게 수영은 '헤엄을 치지 못하는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능력'으로서 의미를 갖습니다. 그리고 사라는 이 신념을 유스라에게 전달함으로써, 동생이 진정한 난민 올림픽 팀의 선수로 각성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스포츠와 스포츠가 아닌 것의 조화라는 게 그리 쉽지는 않은 일인데, 이 부분이 꽤나 좋았어요.

 


종합해보면, 정말로 깔끔하고 산뜻한 영화입니다. 소재를 생각하면 믿을 수 없는 부분이죠.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특성 때문에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부분도 있지만 적당한 집중력을 유지해 갑니다. 섬세하게 정제된 화면과 배우들의 케미는 보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한편 제가 사는 곳에서는 좀처럼 접할 수 없는 난민들의 사정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던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지, 어떤 사람들인지, 어떻게 그 먼 길을 갈 수 있었는지. 난민들이 국경을 넘어가는 구체적인 방법이나 시설을 접하고 꽤 놀라기도 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바다를 건넌다는 건 들었지만 저렇게, 저런 게... 일어난다고? 

 

제가 당장 어떤 운동에 투신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것을 알고 조금쯤은 평소와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건, 틀림없는 좋은 이야기의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이라면 더욱.

 

 

<더 스위머스>

머나먼 뉴스가 아는 자매 이야기가 되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