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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더 페이션트> 리뷰: ★★ 끼니 때우기에는 아쉬운 경량식

원더 2023. 4. 17. 21:06

 

이번엔 프랑스 심리 스릴러 영화입니다.

원제는 <Le Patient>. (영어로는 <The Lost Patient>)

 

넷플릭스 더 페이션트

 

일가족이 다 살해당하고 혼수상태에 빠져있다가 의식을 되찾은 토마.

그는 심리 상담사 아나와 함께 사건이 있었던 날의 기억을 되찾으려고 하는데....

 

유럽 영화답게 은근하고 알듯 말듯 미묘한 분위기가 특징이고 약간 지루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게 묘하게 계속 보게 되네요.

 


기억 맞추기 놀이

 

토마는 완전한 기억 상실은 아니지만, 사건이 일어난 밤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 작품의 핵심은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일어났던' 그 모든 일을 재구성하는 것에 있습니다.

 

이런 류의 심리 스릴러는 사실 쌔고 쌔서 그동안 안 시도해 본 것이 없기 때문에 무슨 반전이 있다고 해도 전부 예상 가능합니다. 그러니 애초에 '어떤 비장의 반전이 있을까?'라고 기대하면서 도키도키하지 말고 어떻게 과거와 기억과 현실을 엮어나가는지에 집중하면 좋습니다. 

 

넷플릭스 더 페이션트 주인공 토마

 

<더 페이션트>같은 경우는, 수수께끼의 규모는 매우 작지만 그 과정을 한발 한발 차근차근 밟아나갑니다. 토마는 처음에는 누나인 로라를 착하고 매력적으로 표현하지만 아나가 한번 더 파고들자 사실은 로라가 꽤 폭력적인 성격이었다는 점이 드러나죠.

그가 순간적인 이미지로 떠올린 나무 둥치나 벽지, 자동차 장난감 등에도 어떤 의미가 있었다는 것이 순차적으로 밝혀집니다.

 

또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연출을 자주 사용하는데, (과거에서) 로라가 토마에게 "쳐다보지 마"라고 말하는 장면 바로 직후에 (현재) 아나가 "똑바로 쳐다봐"라고 말하는 등 완벽하게 타이밍이 맞는 부분은 인상적이었어요.

 

앞서 이야기했듯 결말은 예측 가능하고 별로 자극적인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숨을 삼키는 긴장감은 적지만, 적어도 그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고 또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일말의 여지가 없도록 분명하게 짜놓고 있습니다. 매우 작지만 탄탄한 뜨개물.

 


※ 아래부터는 <더 페이션트>의 전체 줄거리, 엔딩, 범인의 정체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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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페이션트> 스토리 & 범인의 정체

 

토마는 가족을 살해했던 검은 코트의 남자를 기억해내고, 그가 병원에 와서 자신도 죽이려고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심리 상담사인 아나나 병원 직원들은 그의 말을 믿어주지 않죠.

한편 토마가 기억을 되찾을수록 점차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넷플릭스 더 페이션트 토마와 로라

 

먼저 토마는 로라를 예쁘고 매력적인 누나로 표현했지만, 알고 보니 로라는 폭력적인 성향으로 다소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또 어머니인 베키가 바람을 피고 있다는(적어도 폈다는) 사실은 온 가족이 알고 있고 토마와 로라가 엄마에게 팔찌를 선물하는데 베키는 선물 받고도 그다지 기쁜 기색이 아닙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 팔찌는 쓰레기통에서 발견되죠. 

 

사촌인 딜란이 집에 이사오게 되었을 땐 더욱 이상합니다. 베키는 조카인 딜란에게 어렸을 적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우리는 가족이야"라고 말하는데, 정작 친아들인 토마의 어렸을 적 사진은 앨범에 아예 없습니다.

딜란을 차에 태우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베키는 차로 한 소녀를 칠 뻔했다가 간신히 멈추고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합니다. 로라가 그녀를 달래지만 베키는 그녀의 포옹을 거부하죠.

 

딜란은 집에서 금지된 구역이었던 위층의 빈방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로라와 토마에게 걸리는데, 로라는 "이 방은 아무도 쓰면 안 된다"라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사촌들끼리 이야기하면서 토마의 아버지인 마르크가 아내와의 일에 심한 마음고생을 했고, 자살할 목적으로 권총을 숨겨두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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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이렇습니다.

 

넷플릭스 더 페이션트 토마

 

로라는 어렸을 적 죽었습니다.

토마는 로라의 죽음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부모에게서 제대로 된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컸고, 이는 폭력적인 기질로 발현됩니다. 

즉, 토마가 기억하는 로라의 폭력적인 모습은 토마 본인.

 

부모는 토마를 위로하고 감싸주기는 커녕 아들을 더욱 껄끄러워하고, 그 와중에 딜란을 집으로 데려오게 됩니다.

 

토마는 자신의 부모가 딜란을 위로하고 잘 대해주는 것을 보고 강한 소외감과 위기감을 느끼며, 급기야 부모가 딜란을 감싸면서 자신에게 "혐오스럽다", "우리를 가만히 둬"라는 말을 하자 결국 폭발합니다.

그날 밤 토마는 권총을 들고 부모와 딜란을 쏴죽입니다.

 

그리고 검은 코트를 입고 집을 나오지만, 곧 뒤늦게 자신이 벌인 일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가 칼로 자해합니다.

그러나 그가 죽기 전에 이웃집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다가 집안을 보고 신고함으로써 병원에서 눈을 뜨게 된 것이죠.

 


가족이라는 트라우마

 

아나는 토마가 가족을 살해한 범인이라는 것을 아는 상태에서 그가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우리 가족을 죽였고 내게는 (장성한) 누나인 로라가 있다"라고 주장하자 그 말을 받아들이면서 로라의 존재를 인정해 줍니다.

 

넷플릭스 더 페이션트 심리 상담사 아나

 

나중에 그건 그녀의 '실험'이라고 밝혀지는데, 어감이 좀 별로긴 하지만 아나는 토마가 인격을 분리한 것에서 그를 범인으로써 대하기보단 치료받아야 할 환자로 규정하고 나름대로 그를 돕기 위해 한 일이었습니다. 

 

사실은 영화의 목표는 아나의 목적과 일치합니다. 일가족 살해라는 사건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토마의 심리와 기억 조작, 그리고 그것이 왜,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죠.

 

아나는 이를 '트라우마에 빠진 부모에게 버림받고 혼자 자란 아이'란 말로 단번에 정리해 버립니다. 너무 단번에 직설적으로 밝힌 게 좀 별로긴 하지만 그 트라우마가 아내의 불륜 때문이 아닌 로라의 죽음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나름의 반전.

이게 제일 큰 반전일 듯, 사실 토마가 범인이라는 건 아주 놀라운 일은 아니라서

 

진실을 모두 알고 다시 곱씹어보면 모든 일들이 토마에겐 너무나 가혹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 너무나.

 

이를테면 딜란을 데려오는 길에 차사고가 날 뻔했을 때, 베키가 눈물을 흘린 것은 교통사고로 죽은 딸을 떠올렸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토마는 뒷좌석에서 앞으로 몸을 기울여 엄마를 안아주는데 베키의 반응은 "이거 놓으라고"입니다.

그리고 그다음엔 베키가 딜란을 껴안고 (아들에겐 안 해주던) 애정 표현을 하는 것을 토마는 지켜보아야만 했죠.

 

넷플릭스 더 페이션트 연출

 

이런 걸로 '가족들을 죽일 만했다'고까지야 하지 않겠지만, 토마가 어렸을 적부터 그의 인격을 형성한 외부적 요인이 너무 분명해서 거의 납득이 가는 수준입니다.

또 병원에서 깨어난 후 토마가 로라라는 환상을 만들어낸 것은 자신이 느낀 고독과 소외감을 나누기 위한 것. 

 

영화가 그렇게 감정적인 톤이 아님에도 막판엔 상당히 토마에게 몰입하게 되는 구조이고, 또 무엇보다 주연 배우 초민 베르가스의 섬세한 연기가 돋보입니다. 

 

다만 영화 자체의 볼륨이 그다지 풍부한 건 아니고, 스릴러적으로 본다면 정말 쉬운 난이도라서 뭔가 좀 부족한 느낌이 들긴 합니다. 그럭저럭인 단편소설의 뒷맛이라고 할까, 레스토랑에서 겨우 샐러드 하나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 느낌.

 

<더 페이션트>

끼니 때우기에는 아쉬운 경량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