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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왓쳐> 리뷰 : ★☆ 첨단 보일러 시대의 가스등

원더 2023. 4. 16. 16:19

넷플릭스 왓쳐 포스터

 

아니 왓쳐란 제목이 넷플릭스에 몇 개야 대체...........

 

<왓쳐> 줄거리

남편을 따라 루마니아로 오게 된 줄리아는 언어도 문화도 다른 낯선 환경에 익숙해지기 위해 애를 쓴다.
하지만 매일 밤 건너편 건물의 창가에서 늘 자신을 보는 듯한 사람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집 주변에서 젊은 여성이 살해당하는 사건까지 일어나자 점차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하지만 스토커에 대해 이야기해도 남편이나 경찰은 그녀의 말을 쉽게 믿어주지 않고 줄리아는 점점 더 신경질적으로 변해가는데...

첨단 보일러 시대의 가스등

 

<왓쳐>의 공포는 가냘프고 예쁜 금발 백인 여자가 낯선 땅에서 스토커로 의심되는 남자를 보는데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는 50년 된 클리셰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도 스토킹 피해에 대해서 충분히 진지하게 받아들여주지 않는다는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지나치게 뻔하긴 합니다.

 

넷플릭스 영화 왓쳐 스크린샷

 

뿐만 아니라 화면 연출 역시 약간 대놓고 옛날 스릴러 영화스러운데 특히 텅 빈 공간감이 강조되는 커다란 공간들과 어두운 방 안에 앉아있는 줄리아의 모습은 옛날옛적 <악마의 씨(1964)>나 <가스등(1944)>, 히치콕 영화들을 연상하게 합니다.

 

청록빛이 도는 차가운 조명 아래 펼쳐지는 관음증, 가스라이팅과 스토킹, 낯선 곳에서의 불안이라는 클래식한 요소들은 검증된 만큼 효과적인 서스펜스를 제공합니다.

 

줄리아는 늘 보이는 대상입니다. 그녀는 전직 배우이며, 예쁜 드레스를 입고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이자, 남편의 회사 동료들이나 외국의 택시기사에게 미인이라는 평을 듣습니다. 스스로의 인격이 배제된 대상으로서 취급될 뿐이죠. 

근데 줄리아의 창밖 모습을 길게 카메라로 잡는 인트로 등 관객을 일부러 가스라이팅(줄리아를 보는 시선)에 참여시키려는 노골적인 시도는 너무 수가 다 읽혀서 별로예요.

 

 

루마니아 배경의 넷플릭스 스릴러 왓쳐 주인공

 

하지만 영화는 줄리아라는 인격을 관객한테도 설득하지 못합니다.

작중 줄리아의 취급과는 별개로 그녀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여성이라는 것을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막말로 그녀가 처음부터 엔딩 직전까진 한 일이라곤 남편한테 통역 부탁하기, 짜증내기, 겁에 질리기, 주변에 오해사기뿐. 

 

과거도 심리도 없어서 관객은 줄리아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냥 스토리를 진행시키기 위한 기초 설정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가 서서히 무너져 가는 과정을 가슴 아파하면서 보기엔 줄리아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도 흥미도 생기지 않아요.

 

한편 줄리아는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축 쳐지고 주눅들어 있으며, 영화의 템포도 따라서 축축 늘어집니다. 그녀는 공포에 질렸을 때 별 행동도 못하고 그냥 목을 똑바로 펴고 불안하고 멍한 눈빛으로 앞을 보면서 입을 꾹 다물고 있는데, 영화 내내 똑같은 표정만 보고 있으니 중반이 넘어선 무섭다기보단 지겹습니다.

 

루마니아 배경의 넷플릭스 스릴러 영화 왓쳐
짜증나게 만드는 목적이었다면 매우 성공한 연기

 

처음 배운 루마니아어가 "그녀는 예쁩니다."라는 사실이라든가, 대놓고 예쁘게 보이는 줄리아의 스타일링은 <가스등> 시대에서 한참 지난 오늘날까지도 외적인 평가의 대상이자 은연중에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지적하려는 의도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더 나아가기는커녕 '그래서 뭐 어쩌라고'가 되는 스토리의 공회전은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순전히 영화적으로도 <가스등>이 더 재미있었어.

 


미국놈들이란....

 

말이 통하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다는 언어의 장벽은 실제로 심한 공포입니다. 그런 낯선 환경에 던져지면 불안하고 점차 신경이 날카로워지기도 하죠. 

 

하지만 루마니아어를 못해서 못 알아듣는 외국어가 난무하는 가운데 불안에 떠는 줄리아의 모습은, 안타깝고 불안하게 여겨지기보다 미국인이 아닌 입장에서 매우 불쾌하게 느껴지는 구석이 있습니다.

(물론 줄리아는 나름대로 루마니아어를 배우려고 노력하지만, 중요한 때에는 "영어 할 줄 아세요?"에 기댈 뿐)

 

이리나를 제외하고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이웃 사람들, 관광지에서 사진을 찍는 이리나에게 루마니아어로 소리치며 쫓아내는 경비원이나 뉘앙스상 무례한 말을 한 게 분명한 택시 기사 등 영화는 명백하게 루마니아를 수상하고 불친절하며 불안한 분위기로 묘사합니다. 

 

그리고 상당히 수입이 좋은 것으로 보이는 부부가 사는 동네가 상당히 후줄근하고 위험해 보이며 (이건 줄리아의 필터가 꼈다곤 해도) 대낮부터 영업하는 지저분한 스트립 클럽이 있는 등 인상이 그다지 좋지 못합니다.

 

 

스릴러 영화 왓쳐

 

영어가 안 통하니 세상이 끝난 것처럼 막막하게 느껴지는 건 미국인 종특이라 그렇다 쳐도, <왓쳐>가 루마니아를 다루는 방식이 눈에 띄게 불쾌한 것은 '줄리아라는 개인이 겪는 이야기'보다는 '예쁜 금발 여자가 낯선 곳에 이사 와서 스토킹 범죄의 대상이 되어 공포에 떤다'는 이야기에 맞게 충실하게 만들어진 완벽한 배경 세트로 취급하기 때문입니다. 

 

딱히 영화 배경이 루마니아일 필요도 전혀 없었고, 그저 딱딱하고 불친절하고 지저분하고 왠지 불길해 보이는 배경이 필요했을 뿐인데 거기에 지역색을 씌우니 매우 찝찝할 수밖에요. 

 

뭐, 이렇게 지적하면 모든 해외 로케가 다 문제가 될 소지가 있으니 일일이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고 싶진 않은데, 줄리아가 너무나 수동적인 피해자의 태도만을 보이고 루마니아 사람들의 행동에도 어떤 개연성이나 인격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너무 편하게 외국에 대한 선입견을 빨아먹기만 했다는 인상입니다. 

동유럽이 그렇게 우습게 보이냐 양키 새끼들아

 


※ 아래에는 <왓쳐>의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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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쳐> 결말 & 본격적으로 까기

 

줄리아는 계속 자신을 따라다니는 스토커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남편인 프랜시스부터 시작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떨떠름하고 옆집에 사는 댄서인 이리나만이 그녀를 위로합니다. 

 

어느 날 이리나의 비명 소리를 들은 줄리아는 이웃들에게 소란을 피우며 이리나의 집에 강제로 들어가지만 그녀의 집은 텅 비어있는 상태. 줄리아는 주변으로부터 더욱 신뢰를 잃고 스스로도 신경이 날카로워집니다.

 

줄리아가 스토커로 지목한 건너편 건물의 그림자는 나이 든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초라하고 나이든 남자로, 오히려 줄리아가 자신을 따라다닌다며 그녀를 경찰에 신고합니다.

줄리아는 프랜시스의 회사 동료와 모인 파티 자리에서 자신만 소외당하는 느낌에 남편과 크게 다투고 혼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남자를 만납니다. 그가 보이는 다소 악의적인 감정을 느낀 줄리아는 겁에 질려 집으로 돌아와 짐가방을 챙기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때, 이리나의 집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듣고 그녀는 열려있는 이리나의 아파트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목이 잘린 채 앉아있는 이리나의 시체를 보고 경악하는 것도 잠시 건너편 건물의 남자('거미')에게 제압당하고 맙니다.

 

벽을 통해 들리는 기척으로 옆집에 프랜시스가 돌아온 것을 깨달은 줄리아는 비명을 지르려고 하지만 남자에게 칼로 목이 그어지고, 피를 흘리면서 거실로 기어가는 그녀를 남자는 차갑게 바라봅니다.

그리고 줄리아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게 되자, 남자는 그대로 나갈 채비를 합니다.

 

프랜시스는 줄리아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고, 이리나의 집에 있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합니다. 남자가 이리나의 집에서 막 나오려는 순간 그는 프랜시스와 마주치게 되는데 서로 마주 보고 있던 순간 줄리아가 일어나서 이리나가 서랍에 넣어둔 총을 꺼내 들고 남자를 쏴 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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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한 불만은 다소 참고 봐줄 수 있는 부분이었던 데에 비해, 엔딩은 정말 함량 미달입니다.

이리나가 왜 그리고 어떻게 살해당했는지, 연쇄살인범은 잡혔다면서 왜 멀쩡하게 돌아다니는 건지, 이리나의 목은 잘랐으면서 줄리아는 긋기만 하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연쇄살인범의 패턴을 일일이 설명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개연성(과 거기에 따라오는 공포를 위한) 설명조차도 없어요. 

 

나이 든 아빠와 같이 살고 있는데 내 신세가 너무 처량해서 창가에서 구경하다가 예쁜 여자를 보고 헛된 감정을 웅앵웅하는 스토커 겸 살인범은 오싹하지도 감명 깊지도 않습니다. 

 

제일 기가 막힌 건 엔딩입니다. 

목이 그여서 5분 동안 피를 콸콸 쏟으며 기어가다가 쓰러진 여자가 갑자기 두 발로 서서 범인에게 총을 갈기고 시크하게 쳐다보는 장면에선 어이가 없어서 약간 화나네요.

 

스릴러 영화 왓쳐 엔딩&#44; 결말

 

감독이 여기에서 '오오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지만 결국 자신의 힘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여성의 힘!' 이라면서 감탄을 하라는 의도인 건지는 애매한데, 일단 물리적으로 너무 안되니까 웃길 정도입니다.

줄리아의 심경 변화와 주도적인 변화라고 보기엔 이전까지 줄리아가 주도적인 모습이라고는 단 10초도 나오지 않았기도 하고, 이리나와의 교류도 그리 깊지 않았고요. 

 

사실 이게 적어도 80년대 영화였으면 재밌게 봤을 것 같습니다.... 그럼 히치콕 짝퉁 소리를 듣긴 했겠지만.

어쨌든 화면 분위기나 사건들의 전개까지도 그런 옛날 영화들과 비슷합니다. 초점이 흐려진 배경에서 창가의 남자가 손을 든 모습을 보인다든지, 비닐 봉지 속의 물건이 사람 머리인지 다른 물건인지 헷갈리게 만든 연출 몇 개는 인상적이었지만, 전체적으론 그냥 그랬습니다.

 

이제 금발 여자 와이프가 주인공이거나 '왓쳐'라는 제목의 스릴러는 안 볼까봐... 너무 뻔해....

 

<왓쳐>

50년 전 선배 따라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