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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월드 히어로즈 미션 리뷰 : 이건 그냥 평상시의 히로아카

원더 2022. 8. 19. 12:03

<하이큐>나 <귀멸의 칼날>처럼 총집편이 아닌, 극장판 오리지널 전개로 나오는 영화는 솔직히 좀 유치하고 캐붕 나는 거 각오하고, 그냥 내가 좋아하는 작품이 극장에 걸리니까 팬심으로 보는 게 암묵의 룰인데.....

 

그런 각오가 필요하지 않았던 이번편.

본편에 '휴머나이즈 편'이 있다고 해도 수긍할 정도로, 원작을 보는 것과 같은 기분으로 봤어요.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월드 히어로즈 미션 포스터
이 포스터 너무 마음에 듬...

스토리

개성을 질병으로 규정하는 과격 테러 단체 '휴머나이즈'의 지부를 수색하기 위해 전 세계 히어로들이 협동팀을 꾸리고, 히어로 사무소에서 인턴을 하고 있던 유에이고 학생들도 이에 배속되어 해외로 파견된다. 그리고 휴머나이즈가 전 세계에 개성 인자를 폭발시키는 '트리거밤'을 설치, 폭파시킬 것을 예고한다.

한편, 엔데버 팀에 소속되어 오세온에 파견된 미도리야는 우연히 보석 강도를 뒤쫓다가 현지 소년인 로디 소울과 만나게 된다. 로디가 들고 있던 가방을 노리는 빌런이 나타나고, 미도리야는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쓰고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미도리야는 로디와 함께 국경까지 도망치면서 친구들에게 상황을 알리는 메시지를 남기는데...

 

이번 작품은 전작이나 다른 극장판 작품과 비교해볼 때 약간 특이한 점이 있는데, 애들 능력이 뭔지, 쟤네가 누구며 무슨 관계인지, 초인 사회에 대한 소개를 아예 건너뜁니다.

 

그러니까 "내 이름은 쿠도 신이치. 소꿉친구이면서 같은 반인 모리 란과 놀이공원에 놀러 갔다가~"로 시작하는 그런 인트로가 없고, 중간중간 캐릭터 소개를 겸해서 능력이나 서로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가벼운 씬도 전혀 없어요. 심지어 '원포올'이라는 단어는 나오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히로아카를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약간 따라가기 힘들고 많은 디테일을 놓치게 될 수 있지만 그 대신 작품 내의 스토리-정확히 말하면 감정선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정말 쓸데없는 장면이 없음...

 


본편의 스핀오프라기보다는, 그냥 본편

 

앞서 언급했지만, 특별한 팬서비스 혹은 새로운 타깃층을 끌어들이기 위한 광고(로서의 극장판)가 아니라 그냥 진짜 본편같음.....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월드 히어로즈 미션 미도리야

 

사실 히로아카는 초반부는 파이팅 넘치는 열혈 소년 만화 같지만 가면 갈수록(특히 인턴 재개 편 이후) 매우 진지하고 사회적인 색깔이 매우 부각되는데요. 메인 뼈대는 주인공인 데쿠가 최고의 히어로가 되기까지의 이야기지만, 그 개인적인 서사가 속해 있는 사회적인 배경- 즉 '히어로란 어떤 존재고 어떻게 되어야 하나'란 주제도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고 있죠.

 

그리고 <월드 히어로즈 미션>에서는 본편이 쌓아온 것들을 기반으로 삼아 스토리를 전개해 나갑니다.

 

만약 히로아카를 모르는 관객이라면 미도리야가 로디를 지켜주겠다고 나서는 것이나 "히어로는 폭탄이 터진다 해도 끝까지 자리를 지킨다."는 말이 다른 만화에서도 뻔하게 보이는 정의감에서 나온 거라고 생각하기 쉬울 겁니다.

 

하지만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에서 '히어로'는 그냥 남을 구해주는 사람이나 초능력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말이 아니라, 사회적인 시스템을 따르면서 확고한 직업적 신조를 가진 직업군입니다. 말하자면 현실의 소방수나 의사에 가까운 사람들이죠.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지켜줄게."라는 미도리야의 말은 소년 만화 특유의 열혈스런 대사이긴 하지만, 그와 동시에 프로 정신 넘치는 발언이기도 합니다.

 

... 즉, 본편을 알고 보는 것과 모르는 (혹은 대충 아는) 상태에서 보는 것의 차이가 꽤 커요.

 

뭐라고 할까.... 본편이 오렌지라고 할 때, <두 명의 히어로>나 <히어로즈 라이징>은 오렌지향과 시럽을 첨가한 오렌지 주스라면 <월드 히어로즈 미션>은 그냥 100% 착즙 오렌지 주스.

 


로디 소울의 매력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월드 히어로즈 미션 로디 소울 극장판 오리지널 캐가 인기투표 9위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신기하게 생각했는데, 보고 나니까 완벽하게 납득. 로디는 정말 좋은 캐릭터라서.

 

월드 히어로즈 미션 로디

 

좋은 캐디와 풍부한 감정 표현, 깊이 있는 서사와 조금 얄미운 듯 미워할 수 없는 성격도 로디를 좋아하게 되는 이유지만, 미도리야와 로디의 관계성, 그걸 잘 풀어낸 스토리 방식이 결정적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로디는 히어로도 아니고 딱히 히어로와 밀접한 관련도 없고 관심도 없이 살아온 '일반인'입니다. 사실 본편에서도 이렇게 히어로와 동떨어진 일반인은 거의 없어요. 에리는 일반인이라곤 하기 어렵고, 코우타도 '히어로의 아들'인 데다 카츠마는 히어로가 되기를 지망했고 빌런이 개성을 노리기도 했으니.. 즉, 미도리야와 로디의 만남은 히어로와 1도 관계가 없던 일반인이 히어로를 만나 변하는 이야기입니다.

 

아, 여기에서 '히어로는' 변하지 않아요. '히어로가' 변하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번에 관객이 몰입할 대상은 주인공인 미도리야가 아니라 로디예요. 미도리야보다 로디의 심리 묘사가 좀 더 명확하고 자세하다는 것이 증거이자 장치입니다.

 

로디의 입장에서 보면, 당장의 생존과 이익보다 먼 곳을 내다보는 히어로의 신념이 부담스럽고 이해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코우타처럼) 트라우마나 편견이 있는 건 아니라서 미도리야와 교류하면서 점차 그를 믿고 마음을 열게 됩니다. 일반인이라는 포지션과 로디의 과거사와 심리가 직접적으로 공개된 건 관객들로 하여금 쉽게 몰입할 수 있게 하는 부분.

 

그리고 그런 로디가 보는 미도리야는 매우 강하고 멋지고 믿음직한 히어로입니다. 좀 은은하게 미친 것 같긴 하지만(....) 믿을 수 있는, 나를 지켜줄 히어로.

 

이렇게 시점을 바꿈으로써 드러난, (예전엔 조금 우물쭈물하고 못 미더운 구석이 있던) 미도리야가 이제는 믿음직한 히어로로서 민간인을 지켜주는 모습은 팬들에게 무척 감동적인 포인트인 한편 히어로라는 존재의 의미에 좀 더 무게감을 실어줍니다.

 

월드 히어로즈 미션 로디 미도리야

 

로디가 매우 중요한 인물이지만 그 서사가 기존캐를 대체하거나 비중을 잡아먹는 방식이 아니라 주인공에게 깊이를 더해주는 방식이라는 게 매우 훌륭했어요.

 

게다가 그 연출도 뻔하고 유치하게 대사로 들려주기보다 보여주는 방식을 택해서 매우 효과적으로 마음에 스며듭니다. 미도리야와 로디가 국경을 향해 가는 과정이 음악과 함께 로드무비처럼 나오는 신은 굉장히 감정적이고 인상적인 연출. 순간 본작과 장르를 잊어버리고 '계속 보고 싶다'라고 생각해버릴 정도였습니다.

 


액션: 프로의 전투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월드 히어로즈 미션 바쿠고 미도리야 토도로키

 

포스터부터 대놓고 미도리야, 바쿠고, 토도로키를 강조했는데 사실 이 셋이 주인공이라기보단 이 셋을 제외하고는 거의 안 나온다는 게 더 정확한 말일 듯 싶습니다. 그 외 모든 히어로들은 병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님....

그래서 다른 히어로의 다양한 활약을 기대한다면 조금 실망하게 될 수도 있겠네요.

 

근데 3인 체제라기엔 바쿠고와 토도로키가 (저번처럼) 미도리야를 가릴 정도로 임팩트를 가져가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 전작들에선 이 둘이 워낙 날아다녀서 오히려 주인공인 미도리야가 뒷전이거나 약간 밀린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번엔 정진 정명 주인공이에요.

 

월드 히어로즈 미션 3인방

 

본즈의 스피디하면서 박진감 넘치는 액션 연출은 여전히 훌륭하고, 등급이 높아진 덕분에 더욱 치열합니다.

 

미도리야, 바쿠고, 토도로키뿐이라서 다양한 협동 공격은 보지 못하는 게 아쉽지만 대신 각자의 개성 활용 능력이 꽃을 피워서 단순하다거나 부족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아요. 세명 모두 이동+비행+광역기+미세 조절 다 되는지라...

그리고 바쿠고가 센스 덩어리답게 용도에 맞게 화력을 조절하는 부분이나, 토도로키가 화염을 쓰고 서포터로 열을 식히는 장면 등 디테일도 잘 들어가 있어서 좋았네요.

 

하지만 이번 드래곤볼식 연출은 진짜 호불호 갈릴 듯...

 


전반적으로 푹 빠져서 본 극장판인데, 굳이 아쉬운 점을 들자면 본편의 연장선이라고는 하지만 이 작품 자체 안에서 너무 설명을 건너뛰었다는 것. 특히 빌런의 서사나 이에 대한 미도리야의 태도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단 훨씬 깊이가 있는데 결국 그 '겉으로 보이는 부분'이 너무 얄팍해서 조금 아쉽긴 합니다.

 

'팬서비스'라는 건 보통 캐릭터가 평상시에 보여주지 않던 모습을 보여주거나, 본편에서는 불가능에 가깝지만 그냥 팬들 보기 좋으라고 이것저것 넣는 의미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진짜 팬서비스는 충실하게 본편을 봐온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엔 정말 제대로 팬들을 위한 작품.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월드 히어로즈 미션 원작자 스케치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월드 히어로즈 미션>
★★★☆
이건 그냥 평상시의 히로아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