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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 <소울> 리뷰 : ★★★★☆ 말로 할 수가 없어서, 재즈로 했어

원더 2022. 8. 21. 09:56

 

※ 영화 내용 전반에 대한 스포일러 주의

디즈니 픽사 소울 포스터

 

삶의 목적같은 것은 없다. 모든 인생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매순간을 느끼며 살아야 한다.

 

너무나 옳고.... 너무나 뻔한 말이죠. 인생의 핵심을 꿰뚫는 조언이자, 정작 필요할 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한때 저에게도 이 말이 꼭 필요할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누군가가 이 말을 해주었을 때는 전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지금 내 문제를 너무나 쉽게 여기는 듯한 태도에 상처받고, 한층 더 삐뚤게 굴었던 기억이 나네요.

......하지만 나중에,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정말 그렇다고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엔 때로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포착하는 순간 빛을 잃어버리는 그런 감성이나 말로 하는 순간 너무나 진부한 진리같은 것들. 「인생」이라는 두 글자에 얼마나 많은 것이 들어갈 수 있겠어요?

 

그래서 <소울>은 말로 하지 않았습니다.

 


<소울> 줄거리

픽사 소울 배경

중학교에서 재즈 밴드를 가르치는 조 가드너는 재즈 연주를 사랑하나 녹록치 않은 현실에 아이들을 가르치며 먹고 사는 것이 고작인 피아니스트. 그러던 어느날, 그는 도로테아 윌리엄스의 밴드와 연주할 꿈과 같은 기회를 얻지만 그 직후 사고를 당해 사후 세계에서 눈을 뜬다.

꿈의 무대를 앞두고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조는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고뭉치 영혼인 22를 지구로 가게 돕는 일을 자처하는데....

 

'재즈'와 '사후 세계'라는 키워드만으로 알 수 있듯 <소울>은 그다지 어린이 친화적인 작품은 아닙니다. 픽사가 원래 다 그렇지만, 이번엔 정말 어느 정도의 인생 경험이 없으면 영화의 메시지를 파악하고 이해하기가 힘들 거라는 느낌이 드네요. 등급이 전체 이용가라고 모두가 이해할 수 있다고 여기는 건 글자만 알면 톨스토이를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오류죠.

 

<소울>은 인생의 목적에 집착하는 조와, 인생 따위는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22의 대조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풀어나갑니다.

 


22의 사이드: 우울증으로부터의 구원

 

22는 아직 지구에 내려가지 않은 상태의 영혼으로, 오랫동안 많은 멘토들이 그의 '불꽃'을 찾아주려고 했지만 실패한 후 스스로 지구에 가는 것을 거부하게 되었습니다.

 

22는 (설정상) 인생을 아직 시작하지 않았지만, 사실 그는 인생과 자신에게 아무런 가치를 느끼지 못하며 인생을 이미 살고 있는 사람을 상징합니다.

 

디즈니 픽사 소울 22

 

22의 냉소적이고 공격적인 행동은 방어 기제에 기반한 것이고, 이는 우울증의 증상과 상당히 비슷합니다.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은 인생이 별로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인생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습니다. 인생이 실제로 멋진 것이고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은 다 자기 인생을 잘 살고 있는데, 나만 이렇게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없이 우울하다면 그것은.....

내 잘못이니까.

 

이는 깎아지른 절벽 사이에 나 있는 한 뼘짜리 길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22는 양 옆에 있는 자기 혐오라는 심연을 보지 않기 위해 눈을 감고 인생의 가치를 부정하며 당당한 척 버티고 있는 거죠.

 

디즈니 픽사 소울 조 22 (1)디즈니 픽사 소울 조 22 (2)

 

그런 22가 인생의 가치를 인정하게 되는 과정은 좌충우돌 우당탕탕하지만, 무척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겁에 질려 비관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던 22는 조금씩 마음을 엽니다. 그의 모든 멘토들은 실패했고 조의 말도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맑은 날씨가, 이발사 친구의 솜씨가, 유리병 속의 사탕이, 지하철 음악가의 연주가 그를 변화시키죠.

 

그리고 이 과정에서 숨어있던 22만의 개성과 장점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22는 조가 그냥 지나쳤던 것들에 주목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만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친구의 이야기를 물어봐주고, 낯선 사람을 흥미롭게 바라보며, 통풍구의 바람이나 빙글빙글 돌면서 떨어지는 단풍나무 씨앗에 집중하죠.

 

 

생생하고 풍성한 감각을 받아들이는 경험들이 그를 점차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었고, 22는 이 세상이 친근하고 다정하며 흥미롭다고 느낍니다. 22가 자신(조)의 몸이 바보같고 끔찍한 몸뚱아리라는 생각을 하다가 미용실에서 이발을 한 후 거울을 보고 '멋지다'고 인정하는 것이 대표적인 장면 중 하나죠.

 

결국 22에게 중요했던 건 누군가의 설교나 가르침이 아닌, 자신의 감각과 인식이었습니다. 그에겐 아무것도 잘못된 게 없었고, 답은 그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그를 방해하고 상처입히고 우울하게 만들었던 것은 멘토들의 말과 그 자신의 자기 혐오였죠.

 

상담 치료를 받아본 적이 있다면 작품 전반에서 매우 익숙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텐데, <소울>은 실제로 22의 심리적 우울감을 치료하는 이야기가 맞습니다. 조는 노련하고 친절한 상담 선생님이 아니라서 처음엔 22를 상처입히고 말지만, 뒤늦게나마 깨닫고 22에게 외치는 그의 말은 22 뿐만이 아니라 22와 비슷한 절망에 빠진 모든 이들에게 던지는 <소울>의 강렬한 메시지입니다.

너에게 잘못된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괜찮아.

 

디즈니 픽사 소울 22와 조

 

인간이었던 멘토들은 죄다 실패했는데, 신적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는 제리는 22를 걱정하기는 해도 그가 쓸모 없다거나 잘못되었다고 여기는 기색은 전혀 없이 기다리면서 항상 최선을 다해 돌봐주는 것(=멘토를 찾아주는 것) 역시 의미가 깊습니다. 어떤 영혼도 결코 잘못되지 않았고, 잘못될 리도 없는 존재라는 사실에 대해서.

 


조의 사이드 : 일상과 불꽃

 

한편 다른 한쪽의 주인공인 조는 22와는 전혀 다른 인물로, 완전히 다른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나름대로 온화한 사람이고 재능있는 재즈 피아니스트지만, 성숙한 인물은 아닙니다. 그는 현실을 부정하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22를 이용하려고 했죠. 음악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조의 인생관은 아집에 가득 차 있고 그의 삶은 외롭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소울>이 아주 특이한 점이 드러납니다. '현재를 즐겨라'는 주제를 다루는 비슷한 작품들은 대부분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강조하느라 무난함에 큰 가치를 두고, 안정적인 일상 대신 빛나는 한 순간에 목숨 거는 유형의 인물들에 대해서는 대체로 부정적이거든요. 그러니 보통 작품 같았으면 조는 파멸하거나, 아니면 과욕을 부리는 것을 그만두고 소소하고 평범한 행복을 찾아 사는 엔딩을 맞았을 겁니다.

 

그러나 <소울>은 조금 다릅니다. 이것이 예술가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이자 예술가를 위한 작품이기도 하다는 것은, 조의 피아노 연주 장면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디즈니 픽사 소울 피아노 연주
86예술가의 몰입을 잘 표현한 연주 장면

 

조는 많은 사소한 결함을 가진 인물이었지만, 조의 음악은 진짜이고 그의 연주는 아름답고 모두를 감동시킵니다.

 

조가 22의 배지를 빼앗아서 무대에 오른 순간, 관객들은 22를 희생시킨 그의 이기적인 행동이 벌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긴장하게 됩니다. 하

지만 그는 최고의 무대를 만들었죠.

 

조는 무대에 오르기 위해 도로테아에게 두번 시험을 받았습니다. 첫번째는 그 자신의 능력으로 합격했고, 두번째는 "나는 음악을 하기 위해 태어났다, 음악만이 내 운명이다."라는 강한 주장을 관철시켜서 통과했습니다. 이건 그의 심경의 변화나 22와의 경험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부분입니다. 조가 녹록치 않은 현실 속에서 기어코 지켜낸 불꽃, 그의 음악을 향한 사랑과 음악적 능력은 결코 깎아내려지지 않습니다.

 

디즈니 픽사 소울 조와 도로테아

 

"그럼....이제 뭘하죠?"

"내일 다시 와서 연주해야지."

 

그러나 연주를 끝낸 뒤 조는 최고의 무대 한 번으로 무언가 엄청나게 바뀔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고, 내일도 모레도 그 다음날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도로테아는 재즈 연주를 하는 삶이란 끝이 없으며 언제나 오늘처럼 좋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사실, 이는 그가 각오해야 할 것임을 암시하죠.

 

여기에서 조가 연주에 성공한 것은 스토리 구조상 <구운몽>이나 <홍루몽> 마냥 그 직후의 허탈감과 깨달음을 느끼게 하기 위한 장치라는 의견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좀 다르게 봅니다. 조는 공허감을 느끼긴 했지만 큰 성취감을 느꼈고, 가족과 동료에게도 큰 칭찬을 받습니다. 그는 '다 부질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것을 깨달았을 뿐입니다.

 

그래서 조는 이 세상에 예술이 전부가 아니고, 더이상 예술을 하지 못하게 된다 하더라도(=죽더라도) 자신의 인생이 의미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자신의 인생과 22의 인생은 전혀 차이가 없다는 점을 알고 22에게 삶을 돌려주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소울>은 도저히 공존할 수 없어 보이고, 많은 작품들이 묘사하는 것을 포기한 두 가지를 함께 담아냈습니다. 예술가들의 고집과 오만을 공격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존중하면서도, 그들의 삶에서조차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효과적으로 알려주고 있죠.

 

 


그러니 모두들 명상을 하자

 

<소울>의 세계관과 인생관의 기본적인 베이스는 명상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도로테아가 말한 '물고기 이야기'의 원전은 영성 전문가인 앤소니 드멜로가 쓴 <새의 노래(The Song of the Bird)>입니다.

 

작중에선 종교적인 색채는 많이 빠져서 영성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지만, 작중 신비주의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주변에서 괴짜 취급을 받는 히피스러운 명상가가 세계의 진실을 알고 있으며 상처받은 영혼들을 구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은 상당히 의미심장하죠.

 

디즈니 픽사 소울 움짤2

 

정확히 말하면, <소울>은 명상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기보다는 명상의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명상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문윈드가 시끄러운 뉴욕 한복판에서 간판을 돌리면서 무아지경에 올 수 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하는데요.

 

명상은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명상은 굉장히 두루뭉실하고 관념적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꽤... 뭐랄까, 의외로 감각적인 체험이죠. 주변의 소리, 손끝의 감각, 심장 소리, 나아가 내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긍정도 부정도 없이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명상의 시작입니다. (끝은 저도 모르겠군요.) 따라서 22와 조가 조그만 것들, 현재의 어떤 감각이나 순간적인 인상을 받아들이고 이에 주목하게 된 것은 상당히 명상적인 행동이라고 볼 수 있죠.

 

이를 이해하면 <소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좀 더 명료하게 알 수 있습니다. <소울>은 관객에게 명상을 할 것을, 감각과 인상을 충실하게 느낄 것을, 여기에 없는 무언가를 찾을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완전히 받아들일 것을 권합니다. 이곳이 이미 바다이고 내 주변의 모든 것이 바닷물이란 것을 깨달으세요.

 

다른 어떤 것을 찾을 필요 없이 나는 이미 삶을 살고 있으며, 이 모든 순간과 모든 것들이 전부 삶입니다.

 


픽사가 이야기를 쓰는 법

 

다른 작품 같았으면 뮤지션으로 대성공한 조의 콘서트에 찾아온 어린 아이 모습의 22를 보여주면서 엔딩을 냈을 겁니다. 단순하고,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엔딩이죠. 하지만 <소울>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픽사니까.

 

<소울>은 해피 엔딩이기는 하지만, 엔딩 이후 펼쳐질 등장인물들의 앞날에 대해서는 굉장히 모호하게 나옵니다. 조가 당면했던 가장 큰 문제(죽느냐 사느냐)는 해결되긴 했지만, 교사로 일을 할 것인지 음악에 전념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한편 22는 더욱 모호한데, 우리는 결국 22에게 불꽃이 되었던 것은 정확히 무엇인지도 알 수 없고 22가 지구에서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관객들의 대다수는 인간이 된 22를 다시 만나지 못해서 아쉽고 무언가 밋밋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죠.

하지만 픽사는 이런 관객의 일차원적인 흥미를 위해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디즈니 픽사 소울 지구

 

지구는 넓고, 인류는 많으며,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픽사는 작위적인 엔딩을 구상하기보다는 영화가 끝난 후에 이 세계관이 자연스럽게 관객의 인생으로 편입될 수 있도록 일부러 서사의 마무리를 열어두었습니다. 조는 앞으로 누구를 만나도 22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할텐데, 우리 역시 마찬가지죠. 이런 엔딩을 통해서 <소울>은 조와 22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한때 저 조그만 영혼이었고 또 지금은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가 됩니다.

 

 

<소울>
★★★★☆
100분짜리 심리 테라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