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마 감상/영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리뷰 : 요즘 애들은 이렇게 놀아

원더 2022. 8. 31. 18:57

 

 

 

 

 

여러분에게 있어서 최고의 <스파이더맨> 영화는?

토비, 앤드류 아니면 톰?

저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입니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인투 더 스파이더버스'라는 원제로 부르는 걸 훨씬 더 좋아 하지만

 

마침 넷플릭스에 있어서 또 봤어요. 역시 질리지 않아. 

 

 

스토리

평범한 소년 마일즈 모랄레스는 지하철 폐역에서 그라피티를 그리다가 방사능 거미에게 물리게 된다. 다음날 아침 갑작스럽게 생겨난 이상한 힘에 당황한 마일즈는 거미에게 물린 장소를 다시 찾았다가 스파이더맨이 브루클린에 다른 차원을 불러들이려는 킹핀의 악당들과 싸우는 모습을 목격한다. 차원이 완전히 열리는 것은 막았지만, 사투를 벌이고 중상을 입은 스파이더맨은 마일즈에게 킹핀의 계획을 저지할 수 있는 열쇠를 넘겨주고 마일즈가 보는 앞에서 목숨을 잃고 만다.

스파이더맨이 죽었고, 그의 정체가 '피터 파커'임이 밝혀서 슬픔에 잠긴 뉴욕. 마일즈는 스파이더맨의 장례식에서 용기를 얻어 자신의 초능력을 발휘해보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아 풀이 죽는다. 그는 스파이더맨의 무덤에 찾아가 사과하는데, 그곳에서 똑같은(것 같지만 좀 다른) 스파이더맨 '피터 B. 파커'를 만나고...

 


요즘 세대의 스파이더맨

 

일반인에게 '스파이더맨'의 서사는 고등학생인 피터 파커의 삼촌이 죽고 친구가 배신하고 여친이 죽는 그 시간을 영원히 반복하고 있겠지만, 사실 코믹스에서의 피터는 이제 전혀 어리지 않습니다.

학교는 애저녁에 졸업했고, 여친이 애를 낳았다가 말았다가, 회사를 차렸다가 망했다가, 죽었다가 살아나고 그랬습니다. 어벤저스 슈퍼히어로들에겐 아직도 조금 어린애 취급은 받지만 그건 상대적인 거고, 스파이디가 짬밥으로 누구한테 밀릴 정도는 아닙니다. 독자들보다 심하게 느리게 나이를 먹고 있긴 합니다만, 어쨌든 피터 파커도 꽤 나이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떠나와 한동안 비어있던 자리, '학교에서 일상과 고군분투하는 틴에이저 스파이더맨'으로서 새롭게 등장한 것이 바로 마일즈 모랄레스죠.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마일즈

 

1960년대에 학교를 다닌 피터 파커의 이야기가 2010년대의 청소년인 마일즈의 이야기와 똑같을 수는 없겠죠. 스니커즈에 후드 차림의 캐주얼한 패션, 다인종 사회 소속이며 거기에서 비롯된 정체성과 고민을 안고 있고, 예전과는 달라진 (슈퍼히어로나 세상에 대한) 관점들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 등 마일즈에겐 요즘 독자들이 이입하고 공감할 수 있는 현대적인 요소가 가득합니다.

.... 한마디로, 마일즈는 요즘 애라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사실 <스파이더맨: 홈커밍>이 오히려 마일즈의 이미지를 훔쳤다고 봐도 될 정도입니다. 친구도 훔쳤고

 

마일즈 자체도 무척 매력 있게 완성된 캐릭터고 이미 코믹스에서는 큰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마일즈를 멋지게 영화관에 데뷔시켜 주었습니다. '요즘의 스파이더맨'에 걸맞은 '요즘의 방식'으로요.

 

 

 

 

 


2D와 3D 사이의 웹 스윙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3D 애니메이션이지만 카툰 렌더링 덕분에 묘하게 2D 느낌이 납니다. 그래서 2D 특유의 과감한 화면 연출과 3D의 깊숙한 공간감이라는 장점을 둘 다 가지고 있어요. 아예 만화 컷과 같은 연출이나 그라피티에서나 볼 듯한 화면이 나와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한편 건물이나 나무 사이를 빠르게 웹 스윙으로 지나가거나 낙하하는 장면에서의 입체감은 순식간에 관객을 화면으로 끌어들입니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움짤
처음 본 순간 진짜 'ㅁ'..............

 

영화는 기술을 뽐낸다기보다도 센스를 자랑합니다. 놀랍도록 진짜 같은 CG 그래픽은 많이 봤지만, 이렇게 완벽하게 만화 같은 장면들은 처음 봐요.

 

 

사실 슈퍼히어로물은 만화책 태생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 유치하고 올드한 느낌을 가지게 되는 단점이 있습니다. 특히 비주얼적으로요. 쫄쫄이에 망토를 걸친 차림이나 슝슝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은 아무리 현실적인 CG로 구현되어도 그 특유의 '만화 같음'이 남아있어서 몰입을 방해하곤 했죠. 

(혹은, '이건 슈퍼히어로물이니까 저렇게 실제 같지 않게 우스운 의상이나 액션은 감안하고 봐줘야 해'같은 전제로 쓰였습니다.)

그래서 슈퍼히어로 영화에 대해 "만화 같다"는 말은 사실이긴 하지만, 다소 까내리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슈퍼히어로의 운명....이라고, 저도 생각했어요.

 

하지만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오히려 만화책 태생이기 때문에 얻은 힘을 최대한 발휘합니다. 이 영화는 "만화 같다"는 말을 칭찬으로밖에 쓸 수 없게 만듭니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절묘한 타이밍에 2D와 3D를 넘나드는 장면들은 때로는 그 자체가 만화책 페이지 같기도 하고, 때로는 그 만화 속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전혀 올드하거나 평면적이지 않아요. 

 

사실 '만화'라는 매체가 보통 세련되었다거나 힙하다고 여겨지지는 않죠. 하지만 이 작품은 브루클린의 모습, 마일즈의 일상과 취향, 액션신의 구성과 감정적인 흐름, 모든 것이 동시대의 분위기와 트렌드를 녹여 넣어 완벽하게 힙한 만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이런 트렌디함은  단순히 비주얼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아이디어와 콘셉트가 그렇습니다.

 

마일즈는 아프리카-라틴계 미국인이고, 그가 자주 듣는 음악이나 취향 역시 그의 인종적, 환경적 배경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또한 그웬은 보호받는 대상이 아닌 주체적인 여성 히어로입니다. 뭔가 ㅈㄴ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으니 현타가 오긴 하는데.. 이른바 PC죠. 이 역시 예전의 <스파이더맨>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2010년대 이후의 분위기를 표현한 부분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비슷한 이념을 표방하는 수많은 실패작과 달리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대놓고 촌스러운 대사로 교훈을 읊거나 과도한 후보정으로 작품 분위기를 망치지 않습니다. 

대신 작중에서 다인종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일상의 모습, 서로를 대하는 자연스러운 태도, 실제 아프리카-라틴계의 곡들로 채워진 사운드 트랙 앨범이 이 영화가 지닌 다양성을 대변하죠. 더없이 자연스럽고 힙하게. 

 


반복이 아닌 변주

 

영화의 플롯은 단순하지만 완벽한 짜임새를 갖추고 있습니다. 스파이더맨을 그렇게 우려먹어도 언제나 잘 나가는 이유는 그의 서사가 매우 뚜렷하고 효과적이기 때문인데요. 이번에도 역시 "어린 청(소)년이 우연히 큰 힘을 얻고 방황하다가 책임을 깨닫는다"는 교훈은 여전히 유지됩니다. 그리고 마일즈가 겪을 사건들이나 반전은 어느 정도 대충 예상이 가능한 범위입니다.

.... 그런데 전혀 지루하지 않아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마일즈 그래피티

 

영화 속에서 브루클린, 학교, 가족 등 마일즈가 소속된 환경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는 마일즈에게 굉장히 몰입하게 만듭니다. 사실 '어리바리하지만 잠재력을 가진 뉴비 주인공'이 매력적이고 귀엽게 보이느냐, 재수 없게 보이느냐는 결국 작품의 정성에 달린 문제거든요. 

작품을 보다 보면 알겠지만 이 작품이 마일즈를 보는 시선은 무척 따뜻하고 세심합니다. 

 

영화는 마일즈가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해서 방황하고, 조금 내성적이지만 올곧고 책임감이 있으며, 겁을 먹었다가도 용기를 내는 모습을 하나하나 찬찬히 지켜봅니다. 마일즈의 입체적이고 섬세한 내면을 시간을 들여 묘사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충분히 마일즈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하죠. 

 

뉴 유니버스 스파이더맨들

 

마일즈를 포함해, 각각의 평행 세계에서 온 스파이디들은 모두 '스파이더맨의 삶'이라는 주제로 변주된 멜로디입니다. '스파이더맨'이라는 씨앗은 같지만, 제각기 다른 시대와 환경에서 싹을 틔워 고유한 색채를 띠게 된 거죠. 

 

이들 중 피터 B. 파커와 그웬의 비중이 크고 나머지는 임팩트가 있는 카메오 정도지만, 어느 하나 잊어버리거나 까먹지 않을 정도의 충분한 개성(체격, 성별, 그림체 등)을 가지고 있는 좋은 조합입니다. 그리고 각자의 고난과 시험을 극복한 이 모든 스파이더맨들이 새로운 스파이디의 탄생을 도와준다는 서사의 연결도 매우 흥미롭고 매력적인 부분. 

 

실사 영화들은 스파이디 서사의 '반복'이지만, 뉴스파는 '변주'를 택했습니다. 그리고 안전지대에서 벗어난 이 과감한 행보는 스파이더맨이 어떻게 그 오랜 세월 동안 계속 사랑받을 수 있는지, 또 앞으로 얼마나 더 우려먹어도 되는지에 대한 확신 어린 증명이 됩니다.

 


 

마일즈는 아직 갓 깨어난 뉴비 슈퍼히어로지만,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능숙하고 노련한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스스로에 대해서 잘 알고, 자신의 힘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가벼운 분위기와 감정 이입 타이밍을 조절하는 완급, 신선하고 세련된 연출과 클래식에 대한 리스펙과 유머를 곁들인 반전 등 모든 요소를 동원해 새로운 슈퍼히어로가 탄생하는 것을 돕습니다. 

그러니 내내 감탄할 준비만 해두면 됩니다. 

 

마일즈 모랄레스 움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
자기 힘을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이렇게 멋지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새로운 스파이더맨 평행세계의 시작! “스파이더맨은… 우리 말고 얼마나 더 있죠?” 평범한 10대 ‘마일스 모랄레스’는 우연히 방사능 거미에 물려 스파이더맨 능력을 가지게 된다. 혼란스러워하던 ‘마일스’는 악당과 싸우고 있는 ‘피터 파커’를 마주치게 되고 ‘피터 파커’는 ‘마일스’가 자신과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직감한다. 여러 개의 평행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마일스’와 ‘피터 파커’는 이후 스파이더우먼 ‘스파이더 그웬’, ‘스파이더맨 누아르’, ‘스파이더햄’ 등 평행세계 속 공존하는 모든 스파이더맨들을 만나게 되는데… 하나의 유니버스에서 만나 팀을 결성한 스파이더맨들은 과연 세계를 구할 수 있을까? 올겨울, 스파이더맨들의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
평점
8.2 (2018.12.12 개봉)
감독
밥 퍼시케티, 피터 램지, 로드니 로스먼
출연
샤메익 무어, 헤일리 스테인펠드, 니콜라스 케이지, 제이크 존슨, 리브 슈라이버, 마허샬라 알리, 브라이언 타이리 헨리, 릴리 톰린, 로렌 벨레즈, 조 크라비츠, 존 멀레이니, 키미코 글렌, 캐서린 한, 크리스 파인, 스탠 리, 나탈리 모랄레스, 요르마 타코니, 호아킨 코시오, 에드윈 H. 브라보, 오스카 아이삭, 그레타 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