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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배트맨> 리뷰 : 배트맨의 완벽한 턱선만으로 충분하다

원더 2022. 9. 9. 20:15

 

※ 블로그 옮겨온 것. 약간의 수정, 추가된 부분이 있습니다.

※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 주의! 

 

더 배트맨 포스터

 

이 영화는 액션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것.

<더 배트맨>은 액션 영화가 아닙니다.

 

장르적으로는 느와르와 스릴러로 분류되고, 연쇄살인과 도시의 부정부패를 추적하는 수사물입니다. 시원스럽게 때려잡는 액션을 기대하고 간다면 생각과는 달라서 당황할 수 있습니다. 액션이 없는 건 아니지만 화면이 워낙 어두워서 뭘 어떻게 때리고 있는 건지도 안 보여요.

 

아니 그럼 슈퍼히어로물인데 왜 수사물로 만들었냐 싶겠지만, 사실 이건 오히려 배트맨의 근본에 부합한 장르 선정입니다. 배트맨의 가장 큰 정체성 중 하나는 탐정이거든요. 배트맨이 등장하는 첫 번째 만화책이자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시리즈의 이름이 바로 <디텍티브 코믹스>입니다. 그리고 이 Detective Comics를 줄여서 DC, 바로 DC코믹스가 됩니다. 근-본.

 

배트맨 디텍티브 코믹스 표지
배트맨이 첫 등장한 1939년 Detective Comics. 무려 10센트!

 

게다가 배트맨의 명작 코믹스 중에선 느와르나 서스펜스를 강조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따라서 배트맨의 사건 수사를 중점으로 둔 느와르 영화가 나오는 것은 전혀 놀랄 일은 아닙니다.

 

<더 배트맨>의 주인공은 '탐정 배트맨'입니다.

 

'천재'인 것과 '탐정'인 것은 엄연히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동의어처럼 쓰이는 경우가 많고, 배트맨은 천재이자 탐정이라 지금까지 대부분의 미디어믹스에선 이 두 가지 모습이 구분되지 않고 섞여서 나타나곤 했습니다. 탐정의 면모가 나온다고 해봤자 슈퍼 자본주의 파워로 만든 컴퓨터한테 시키는 게 다였죠.

 

하지만 이번엔 직접 녹화 화면을 돌려보면서 꼼꼼하게 단서를 체크하고, 차근차근 증언과 증거를 수집하고, 암호를 해독하는 등 상당히 직접적으로 수사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건 자체도 굉장히 묵직하죠. 시장이 살해당하고 범인은 그의 시신을 훼손하면서 배트맨에게 내는 수수께끼를 남깁니다. 등급은 널널한데 분위기는 훌륭한 청불감. 무겁고 으스스한 연출이 순식간에 관객을 고담시의 어둠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더배트맨 리들러
순둥한 눈망울에 현장에 머리카락을 안 남기려 마스크를 쓰고 랩으로 둘둘 싸놓은 갭이 오싹합니다.

 

메인 빌런인 리들러 칭찬을 안 해줄 수가 없겠죠. 이전까지 리들러는 머리는 좋은데 대체로 다소 웃기고 하찮은 물음표 살인마라는 이미지였는데, 이번 작에서는 아주 리즈 시절을 찍었어요.

조커는 대놓고 남을 웃기려고 시도하지만 기본 인성이 워낙 섬뜩해서 안 웃긴데, 리들러는 철저하고 잔혹하면서도 본인에게서 배어 나오는 걸 숨길 수 없는 연약미(?)가 우스꽝스러운 캐릭터입니다. 그래서 보통 초록색 옷을 입은 개그캐로 나와서 재롱을 떠는 역할을 맡죠.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그 뭔가 하찮고 우스꽝스러운 이미지가 오히려 무서운 요소로 전환되었습니다. 조커처럼 광기를 다소 미화(혹은 정당화)시키지 않고, 사회에서 배척된 아싸찐따의 현실적인 범죄 행각을 제대로 그려냈다고 생각합니다. 좀 어설픈 복면 차림에 뭔가 아마추어같은데 뒤에서 갑툭해서 사람을 막 때려죽이는 초반 장면은 충격과 공포...

그가 내는 수수께끼들은 하나같이 좀 웃기고 어이없는데, 이런 말장난과 계획적인 치밀함이 맞물려 광기의 초록 불꽃을 튀깁니다. 특히 '새' 수수께끼는 답을 알자 매우 허탈하면서도 리들러를 마구 욕하게 되는 역작.

 

사실 후반부에 밝혀지는 캐릭터성에 대해선 조금 아쉬움이 있지만(후술), 영화의 숨 막히는 긴장감은 대체로 모두 리들러의 계획대로라는 점에서, 메인 빌런으로서 맡은 역할을 톡톡히 해냈어요.

니가 이렇게 상또라이라는 걸 내가 깜박하고 있었구나 미안하다 니그마...

 

+) 리들러는 언어유희를 애용하고 대사가 난해해서 그의 수수께끼를 완벽하게 번역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론이었습니다. 그래서 자막 걱정을 많이 했는데, 감수까지 받았다고 홍보한 만큼 완벽하진 않더라도 꽤나 노력한 흔적은 보입니다. 그냥 평범하게 영화 내용을 따라가면서 보기엔 부족함이 없는 정도...라고 해두죠.

 

 

이 영화의 최고 장점은 로버트 패틴슨의 턱입니다

 

농담 아니에요. 그리고 이거 칭찬임.

정확히 말하면 카울을 쓰고 있는 로버트 패틴슨의 턱이 진짜 완벽합니다.

 

슈퍼히어로는 모름지기 하관이 잘생겨야 합니다. 이 이상주의적인 초인들은 세상 사람들을 납득시키기 위해 비주얼부터 설득력을 가지고 있어야 해요. 특히 배트맨은 코를 덮는 카울을 쓰고 있기 때문에 턱이 중요한데, 히어로다운 단단함과 함께 이 인물이 가진 정신적인 불안정성과 예민함이 적당히 어우러져야 하죠.

 

역대 배트맨 배우들

 

역대 배트맨 배우들은 하나같이 완고하고 고집이 센 느낌의 강한 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이클 키튼은 클래식하면서도 입매의 개성이 강해서 누군지 금방 알아볼 수 있고, 크리스찬 베일의 턱은 샤프하고, 벤 애플렉의 턱은 두툼하고 자기주장이 강하죠. 네? 조지 클루니는 배트맨 한 적 없는데요.

 

더배트맨 움짤1더배트맨 움짤2

 

그리고 로버트 패틴슨의 턱은 강인함과 예민함 사이의 균형이 거의 완벽합니다. 배우의 턱선 각도가 완벽하다는 걸 알아서인지 카울이 턱선을 가리지 않는 디자인으로 바뀌었는데, 덕분에 배트맨이 45도 각도로 화면에 등장할 때마다 감탄을 뱉게 만들죠. 와 세상에. 저 턱선 봐. 진짜 그렉 카풀로가 그린 것 같다. 그러다 배트맨이 입꼬리를 살짝 비틀어 올리며 조소할 때면 그만 정신을 잃은 뻔했어요.

 

태생이 만화인 슈퍼히어로물은 자칫 유치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을 멋진 비주얼을 통해 설득을 시도하는 경향이 큽니다.  그리고 <더 배트맨>은 서사에 있어서 비주얼 의존성이 매우 강해요. 반대로 말하면 배트맨의 내면 묘사를 표현하는 대사나 연출은 매우 빈약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걸 또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설득력 있는 비주얼...이라는 거죠.

 

로버트 패틴슨의 얼굴은 햇빛을 쬐면 다이아몬드처럼 반짝거리는 걸로 유명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햇빛이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에 반짝반짝하는 장면은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대신 연기력이 빛납니다.

 

 

이 영화에서는 배트맨의 내면 묘사와 서사가 매우 불친절한데, 그걸 로버트 패틴슨의 퀭하고 창백한 얼굴이 채우고 있습니다. 그냥 얼굴이 서사예요. 미친 듯이 창백한 얼굴, 퀭한 눈, 우울하고도 강한 눈빛에, 날렵한 코에, 완벽한 턱을 보면 누구든 단번에 이 캐릭터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 불안정하고 어두운 성격의 처연한 부잣집 도련님.

 

 

<더 배트맨>이 배트맨의 아이덴티티를 해석한 방식은 눈여겨볼 만합니다.

 

보통 배트맨이라는 캐릭터는 '가짜인 브루스 웨인'과 '진짜인 배트맨'이라는 구도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브루스 웨인으로서의 행동은 배트맨임을 들키지 않기 위한 연막이자, 그가 스스로를 보호하는 심리적 방어막이기도 하죠.

하지만 로버트 패틴슨의 브루스 웨인은 카울을 벗고 있을 때에도 '진짜'입니다. 일부러 철없는 부자나 바람둥이 연기를 하지도 않고, 맨날 동굴에 틀어박혀서 바깥에서 오는 연락은 다 씹는 히키아싸죠. 사람들 앞에서도 심히 관심 없는 태도로 일관해 사회부적응적인 모습을 보이고, 팔코네 같은 능구렁이 앞에선 숙적은커녕 반항기 조카뻘이라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원래 쉽게 동요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큰 혼란이나 절망을 느꼈을 때는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죠. 그는 자신을 감추는 법을 잘 모릅니다..... 아직은.

 

'부잣집 망나니가 사실은 다크히어로'라는 반전은 배트맨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큰 요소지만, <더 배트맨>은 오히려 이것을 포기함으로써 브루스 웨인과 배트맨 사이의 연결 관계를 매우 자연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로버트 패틴슨의 얼굴만 믿고 이 과감한 해석을 선보입니다.

바람둥이 억만장자도, 빈틈없는 공포의 자경단도 아닌 진짜 '그'. 실은 알프레드에게 승질이나 내는 애샛기에, 이상적이면서 자기 파괴적인 면이 있는, 매우 외로운 청년입니다.

 

 

수수께끼: 영화가 3시간 동안 어둡고 느리면 어떻게 될까?

 

이제 영화의 단점에 대해서 좀 이야기를 해보죠. 러닝타임이 무려 3시간 가까이 되는데, 170분 동안 마음 편하게 숨을 쉴 순간이 별로 없습니다. 긴장감이 이어지고, 계속되고, 연결되더니 다시 또 팽팽하게 유지됩니다.

 

일단 리들러의 범죄, 고담 시라는 공간의 묘사, 브루스 웨인이 가지고 있는 상처, 그의 과거에 얽힌 비밀과 자경단으로서의 완성 과정 등 작정하면 3부작으로 우려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스토리를 한 편으로 만들어버렸어요. 그런 만큼 굉장한 포만감을 주지만, 그 압도적인 볼륨과 겹겹이 장치한 반전 때문에 디테일이 뭉개지는 것이 흠입니다.

영화는 저격총을 들고 다섯 개의 타깃을 노리며 조준경으로 초점을 옮기면서 계속 확대했다가 말았다가 합니다. 중간쯤이면 집중력이 바닥나서 '어? 지금 뭐하러 여기 와 있더라?' 싶습니다.

 

게다가 화면은 시종일관 어둡습니다. 직사광선이 비치는 장면이 하도 안 나와서 로버트 패틴슨이 정말 뱀파이어라 낮에 촬영을 못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니까요.

 

 

더 배트맨 액션더 배트맨 움짤 카체이스

 

화면 연출도 호흡이 매우, 매우 느립니다. 연출 감독의 폐활량이 다이버 세계 챔피언급인 게 분명해요. 이야기의 진행과 크게 관련이 없는 부분까지도 끝에서 끝까지 다 보여주는데, 일례로 예고편에서도 잠깐 나온 카체이스를 들 수 있습니다. 비와 전조등이 번쩍거려 거의 보이는 것은 없는데 추적이 끝날 듯 끝나지 않으며 계속 이어져서 저는 이대로 서울에서 천안까지 가는 줄 알았습니다.

 

이렇게 시종일관 어둡고 긴장감이 유지되니 피곤해질 수밖에 없죠. 도대체 제작진은 어떻게 이런 텐션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하는지 오히려 존경스러울 정도입니다. 중간에 그나마 웃으라고 넣은 것 같은 장면이 몇 개 있기는 한데, 시그널이 너무 미약해서 웃어도 되는지 눈치 보다가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맙니다.

 

강박적인 농담 따먹기로 영화 분량의 절반을 채우는 영화들에 비하면 고담시 양반이지만, 역시 양반 되기는 힘든가 봐요. 결과적으로 리들러의 범행에 몰입하기에는 집중력이 떨어지고, 배트맨의 내면 묘사와 '복수'를 다루는 큰 주제도 명확하게 드러나질 않습니다.

 

더 배트맨 캣우먼과 배트맨

 

씁, 이게 진짜 아쉬운 게... 중간중간 좀 더 발전시킬 여지가 있는 서브 내러티브가 있었는데 메인의 느린 호흡 때문에 여기에 깊이 들어갈 타이밍을 놓친 거예요. (이 영화 원래 4시간짜리였다는 제작진의 말이 뻥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배트맨과 캣우먼과 리들러는 모두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그 과거가 그들의 현재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배트맨은 나머지 둘과 다릅니다. 리들러가 대저택에 사는 브루스 웨인은 진짜 고아가 아니라고 말하고, 캣우먼도 비슷하게 부잣집 도련님이냐며 돌려까죠. 배트맨은 사실상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도 공감받지 못해요.

배트맨은 리들러가 남긴 '어떤 물건'이 뭔지 알아보지 못해서 크게 한 방 먹은 것도 좀 깊게 들어가면, 탐정 기술이 미숙하다기보단 그가 부잣집 애였으니 그런 걸 본 적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리들러와 배트맨은 태생적으로 다른 환경이라는 것.

 

너는 돈이 많으니까 부모가 없어도 살만했고, 그러니까 착하게 살 수 있는 거 아니냐는 말은 무척 잔인하게 들리지만 어느 정도 진실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배트맨은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부정하지도 않고, 굳이 설명하고 이해받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브루스 웨인은 유산과 함께 원죄를 물려받았고, 그래서 더욱 외롭고 처절합니다.

 

... 저는 이 부분이 좋았거든요. 사실은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도 있는 같은 처지인데도, 배트맨은 이해받지도 못했고 그 스스로도 자신을 이해시킬 생각도 없다는 게.

이번작의 브루스는 정말 역대급으로 외롭고 슬픈 인간이에요.

 

또 "나는 복수다."란 그 유명한 대사로 시작해서 배트맨의 복수가 다른 사람처럼 단순히 부모님의 원수를 처단하는 일회적이고 사적인 복수가 아니라 범죄 그 자체에 대한 복수가 되고, 나중에는 다른 사람들의 구원으로 확장되며 히어로로서 완성되어가는 모습도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다만 문제는 영화에서 이런 심리나 동기를 전혀 구체적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는 거죠. 이런 류의 묘사나 표현은 그냥 스쳐 지나갈 뿐입니다. 그놈의 진주 목걸이를 보여주지 않고도 브루스 웨인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를 묘사하는 방식은 무척 세련되었지만, 때로 직접적인 표현이 필요할 때에도 모호하게 남겨놓기 때문에 읽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중반 이후 결정적인 변화 과정에 대해선 거의 상상력을 발휘해 따라가야 합니다. 이렇게 눈빛 하나, 대사 하나를 곱씹으며 괴로워하는 것은 오타쿠뿐이고 라이트하게 보면 인물의 심리에 전혀 닿질 못해요.

 

그런 면에서 조연 캐릭터의 활용도 지적하고 싶은 부분입니다. 이 영화가 좀 신기한 게, 배트맨 몰빵 영화인 것 같으면서도 정작 배트맨의 내면 묘사는 극히 적고, 다른 캐릭터들은 사건의 장기짝 역할 외에는 별로 하는 게 없습니다.

그럼 뭐지...? 누가 170분을 채운 거지..?

 

더 배트맨 알프레드와 브루스
유독 알프레드 앞에서 애샛기같은 느낌이 더 나는 이번 브루스....

 

알프레드와 고든은 좋은 배우들을 찾았다고 생각하지만, 작중에 존재하는 것은 인물이 아니라 '배트맨 주변 NPC'뿐입니다.

특히 알프레드는 제작진이 앤디 서키스에게 배역 이름과 할 일만 던져주고 오마카세를 시킨 듯합니다. 알프레드가 조금이나마 인상적으로 느껴졌다면 그건 순전히 배우의 연기 덕이에요.

 

더 배트맨 캣우먼1더 배트맨 캣우먼 클럽

 

조이 크래비츠의 캣우먼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특유의 종잡을 수 없는 분위기, 냉정하지만 내 편한테는 의리 있는 셀리나의 성격도 잘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캐릭터 자체가 스토리 전개에 진부하게 쓰이는 감이 없지 않으며 중반부 이후에는 그저 그런 장기짝이 되어버립니다.

 

또 빌런은 여럿 나오는데 비주얼적인 특장점이나 카리스마가 없는 점이 아쉽습니다. 현실적이고 어두운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지만, 솔직히 다들 좀 평범한 느낌이 없지 않네요. 리들러 역시 범행이 임팩트가 있을 뿐, 캐릭터 자체나 동기는 좀 흔한 느낌.... 뭔가 좀 더 이케이케 잘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캐릭터 메이킹의 마무리가 좀 어설펐어요. 리들러 본인처럼.

팔코네는 그다지 무서워 보이진 않습니다. 물론 이 아빠 친구 아저씨 같은 같은 느낌이 주는 묘한 긴장감은 있지만 작중에서 계속 공포감을 빌드한 것치고는 약간 기운 빠지죠. 배트맨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는 관객일 경우 마로니와 팔코네를 헷갈려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리라 봅니다.

가장 괜찮았던 조연을 들라고 하면 저는 (의외로?) 펭귄을 뽑겠습니다. 콜린 퍼렐의 남은 얼굴을 거의 알아볼 수 없긴 하지만, 탐욕스럽고 능글맞은 면을 잘 살리긴 했습니다. 원작에서는 나름 부티나던 인간이 나이트클럽 포주 정도로 격하된 건 살짝 별로긴 해도, 개인적으로 펭귄이 "스페인어도 못하냐 병신들아!!"라며 꽥꽥 발악한 신이 매우 마음에 들었기에 다음에도 또 보고 싶네요.

 


뭔가 단점을 더 많이 적은 것 같긴 하고, 실제로도 단점이 더 많긴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점이 압도적으로 커서 그 자잘한 단점들을 깔아뭉개 버려요. 서사의 디테일을 배우의 비주얼과 연기력으로 채운 감이 없지 않지만, 상당히 도전적인 시도였고 작품의 분위기는 정말로 독창적입니다. 가끔 당황스러울 정도로 훌륭한 연출이 갑툭해서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카울을 쓴 턱이 진짜 예술이라고.... 이것만이라도 봐줘... 진짜 완벽하다고.... 하... 정말...

 

더 배트맨 연출

 

3시간에 이르는 긴 러닝타임과 특유의 무겁고 낯선 분위기 때문에 무턱대고 가볍게 추천할 작품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전 좋아 죽겠습니다. 디씨 영화 또 말아먹을까봐 너무 쫄아서 시작하기 전에 콜라 한 컵을 비우고도 바짝바짝 목이 탔던 코믹스 덕후란 말이에요.

 

먹을 걸로 비유한다면..... 고오급 소고기 패티가 들어간 높이 20cm짜리 수제 버거라고 할까요. 먹기도 힘들고, 호불호도 타고, 먹다보니 재료들이 제각각 튀어나오며 흩어집니다.

하지만 그래도 멋지잖아. 고급이고, 자랑할만한. 드디어 디씨에게 제대로 대접받은 작품 하나.

 

 

<더 배트맨>
★★★★
코믹스 덕후가 아주 오래 기다려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