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생활/여행, 숙박

한 달간의 오키나와 여행기 #4. 남부의 숨겨진 맛집과 비밀의 해변

원더 2023. 6. 25. 07:50

오키나와 치넨미사키 공원에서 보는 바다

01. 관광객들이 덜 가는 곳

 

오키나와는 남북으로 길쭉한 형태고, 섬의 중심지인 나하는 남서쪽에 있습니다. 대표적인 관광지로 꼽히는 아메리칸 빌리지, 마에다곶, 서해안 리조트 일대, 츄라우미 수족관은 전부 나하의 북쪽입니다. 

그래서 버스 노선을 봐도 북쪽으로 오가는 건 많은데, 그에 비해 나하의 남쪽, 남부로 내려가는 것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오키나와의 지역별 정보는 여기.

 

[오키나와 여행 준비] 지역별 특징과 숙소 잡기

오키나와는 생각보다 크고 지역별로 특징이 다르기 때문에 미리 나눠서 알아두는 것이 편합니다. 오키나와는 크게 남부, 중부, 북부로 나뉘고 좀 더 세세하게 나누면 대충 8개 지역으로 볼 수 있

cabinetofwonder.tistory.com

 

남부는 다른 지역에 비하면 관광 개발화가 덜 되어 있는 편입니다. 그래도 얀바루보단 낫지만

해변 몇 개와 유리 마을, (관광객이라면 대부분 관심 없을) 전쟁 추모탑 및 공원 등이 있죠. 

 

하지만 관광객들이 찾지 않는 곳이 덜 아름답고 덜 중요한 곳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찐 지역 맛집, 식상하지 않은 인생샷을 찍을 수 있는 비밀의 장소, 호젓하고 자유로운 여행의 가장 멋진 순간이 이런 곳에서 찾아오는 법. 

 

그래서 오늘은 남부로 가봅니다.

 


02. 고민가 소바집

 

고민가를 개조한 식당으로 현지인 픽의 맛있는 오키나와 소바집이라고 해서 찾아간 곳. 

오키나와 소바는 어제도 먹었지만, 여행 초반에 한번 「정식 오키나와 소바」를 먹어보고 싶었거든요.

 

근데 나하에서 버스로 무려 50분. (거리가 멀다기보단 버스가 워낙 천천히 달리는 덕분)

 

버스 정류장 근처에 정말 아무것도, 아무도 없어서 내렸을 때는 거의 논밭 한 가운데에 버려진 느낌. 

정말 여기에 맛집이...? 아니 정말 사람이라곤 보이지 않는데...? 돌아가는 길 어쩌지? 싶었습니다만... 구글맵을 믿고 나아가다가 차로 가득한 주차장을 발견.

그리고 마치 숨겨져 있는 듯한 정갈한 옛 주택이 나타났습니다.

 

오키나와 소바 가게 야기야

沖縄そばと茶処 屋宜家(やぎや, 야기야)

  • 주소: 1172番地 Oton, Yaese, Shimajiri District, Okinawa 901-0502
  • 영업 시간: 11:00~15:15
  • 휴무: 화요일
  • 주차장: 있음

 

주택이 지어진 지 100년 이상된 국가 유형 문화재(!)라서 류큐 방식의 옛날 오키나와 주택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데, 정문 앞에서 주택의 모습을 떡하니 가리고 있는 '힌푼'이라는 벽(안 좋은 기운을 막고 주택을 보호하는 병풍 같은 역할)이나 붉은 기와 위의 시사상 등 독특한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습니다. 

 

오키나와 소바야 야기야의 내부

 

조심스럽게 신발을 벗고 마루로 올라서서 안으로 들어가면, 내부도 전부 옛날 그대로의 목재와 가구라서 오랜 세월을 품은 나무만이 가질 수 있는 특유의 매끌매끌한 질감과 투박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가 확 와닿습니다.

 

이 외진 위치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거의 오픈 시간이었음에도) 가게 안은 일본인들로 한가득. 

다행히 저는 혼자라서 바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야기야 오키나와 소바 정식

 

그리고 산마이니쿠(삼겹살) 소바 세트를 주문. 

세트에는 오키나와식 볶음밥인 쥬시, 땅콩으로 만든 자마미 두부, 모즈쿠 초무침, 츠케모노(절임채소)가 따라 나옵니다.

 

그리고 저는 모즈쿠와 사랑에 빠져버림........ 사진의 오른쪽 위에 있는 거

모즈쿠는 오키나와의 해초로, 가느다란 검은색 당면처럼 생겼습니다. 모즈쿠 본연의 맛은 그리 미역이나 톳처럼 그리 강하지 않고 담백한데, 탱탱한 면발 같은 식감이 매력적.

보통 초무침을 해서 내는데, 새콤한 식초와 탱글탱글함 식감이 잘 어울려서 더운 날 입맛을 되살려주고, 입가심 역할도 톡톡히 합니다. 건강이나 미용에도 좋아서 일부러 찾아먹는다고 하지만 일단 이 새콤달콤함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오키나와식을 먹을 때마다 꼭꼭 곁들여 먹음..

 

그리고 자마미 두부도 특징적인 오키나와 요리인데, '두부'라고는 하지만 좀 더 찐득한 젤리나 푸딩에 가까운 식감입니다. 매우 쫄깃쫄깃하다 못해 젓가락에 달라붙을 정도.

행인두부의 영향인지 왠지 처음 봤을 때 달달할 것 같다는 인상이었지만, 간장이나 생강 등과 함께 먹는 반찬이었습니다. 고급스러우면서도 중독적인 식감이 특징.

 

본품인 오키나와 소바는 더 말할 것도 없이 맛있었어요!

특히 국물이 매우 맑았는데, 맛이 진하면서도 깔끔해서 감탄. 산마이니쿠는 약간 달달짭짤하게 입안에서 살살 녹고, 오키나와 소바 특유의 밀가루 맛이 나는 유탕처리 면도 국물하고 너무 잘 어울려서 한 그릇을 순식간에 후루룩함.

쥬시도 담백하고 맛있었어요! 

전반적으로 화려하거나 강한 자극은 하나도 없이, 깨끗하면서도 중후한 깊이가 느껴지는 맛. 

 

고작 면 한그릇 먹으러 여기까지 와볼 만하냐고?

쌉가능.

 

 


03. 바닥이 보이는 미바루 해변

 

배를 든든히 채운 후 20분을 걷고, 30분을 기다리고, 버스에 올라타고 다시 15분을 총총 걸어서 도착한 곳은 미바루 해변. 

여기도 심히 "여기 맞나? 해변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긴 한가?" 싶은데, 어찌어찌 길이 있긴 합니다. 

 

오키나와 미바루 해변

 

미바루 해변으로 내려가는 길은 터널처럼 나무나 덤불로 덮여있어서 멋진 사진을 건질 수 있습니다. 마치 비밀의 해변으로 들어가는 것 같아서 한층 더 두근두근.

 

오키나와 미바루 해변

 

하지만 도착했을 때는 아쉽게도 간조였어요.

물이 아주 뒤로 물러나 있어서 거의 갯벌.

 

간조 때에는 글라스보트나 수상 스포츠는 운영하지 않고, 스노클링이나 해수욕도 어려워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덕분에 한적하기는 했지만 풍경도 조금 심심해져 버려서 아름다운 바다색을 감상한 것으로 만족하기로. 

 


04. 미완의 치넨미사키

오키나와 치넨미사키 공원에서 보는 풍경

 

그리고 다음 목적지는 치넨미사키 공원(知念岬公園).

'미사키'가 곶이라는 뜻이니 치넨곶입니다.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온 곶 부분을 정비해서 잔디밭과 정자 등을 만들어놓은 공원. 입장은 무료고,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습니다.

 

오키나와 특유의 맑은 청록빛 바다색과 그 너머로 탁 트인 태평양을 볼 수 있으며, 날씨가 좋으면 오키나와에서 '신들의 섬'이라고 불리는 작은 구다카섬도 볼 수 있습니다. (구다카 섬은 페리로 이동 가능)

 

가슴까지 시원해지는 오키나와의 남부 바다 풍경!

 

 

역시 간조 때라서 물이 빠져나가 있는 모습이었지만, 정말 아름다운 색깔. 

어떻게 바다가 이런 색이지? 

한참을 바라보고, 사방을 쳐다봐도 질리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3시 40분이 나하행 마지막 버스인가 그래서 헐레벌떡 돌아오느라 한번 찍고 오는데 그치고 말았습니다. 좀 더 천천히 걸었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뚜벅이 여행자로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돌아오는 시간표를 신경써야 한다는 것. 

 

뭐, 다음번엔 꼭.

..... 이 정도의 아쉬움은 남겨둬야 다음번을 다시 기약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여행의 모든 순간을 계획할 필요는 없지만, 타이밍 정도는 맞추면 좋겠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